1989년 10월 윤흥길의 소설 ‘완장’을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됐다. 이 드라마에서 저수지 주인은 도둑으로부터 저수지를 지키기 위해 시골청년 종술(감초 배우 조형기가 열연)에게 노란색 완장 하나를 채워줬다.

완장을 찬 종술은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충실하기보다 완장을 ‘권력’으로 착각, 자신의 주인조차 몰라보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 온갖 행패를 부려 결국은 해고되고 만다. 이 ‘완장’을 팔에 차면 마치 타인을 다스리는 권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망동(妄動)을 일삼다가 완장이 벗겨지면 꼴불견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는 교훈을 던졌다.

단순히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인 완장(腕章)을 ‘권력’으로 착각한 인생이 어찌 소설이나 드라마속의 ‘종술’에 국한하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오래전부터 ‘완장권력’은 숱하게 난무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6.25 동란 중 공산치하에서 완장을 얻어 찬 지역의 일부 북한 정권의 앞잡이들이 양민을 무수히 희생시켰다. 그러나 인민군이 패퇴하자 완장권력은 철저히 응징됐다.

현대 우리사회에도 완장의 위세는 대단했다. 학도호국단이 고교에 존재하던 시절 학내 기율부 완장은 등하교 저학년 학생들의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민선 시대에 들어서도 당선이라는 완장을 차게 된 공직자들은 ‘표 구걸꾼’에서 ‘민초의 지배자’로 표변, 위세를 부리기 일쑤였다.

역사적인 청원·청주 통합을 앞두고 요즘 청원·청주통합추진공동위원회(통추위)가 일방통행적 업무추진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통추위가 또 다른 형태의 완장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 예로 통합청주시의 4개 구(區)별 명칭 선정 여론조사와 관련, 구당 3개의 후보명칭에 대해 조사한다고 밝혔다가 명백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2개 후보명칭으로 줄였다. 이에 반발이 일자 다시 3개 후보명칭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입장을 밝힘으로써 빈축을 샀다.

낮은 자세로 민의수렴에 최선 다해야

이같은 통추위의 행정행태는 통추위 구성원들의 ‘자만(自慢)의 발로’가 아닌지 모르겠다. 통추위원 9명은 누구인가. 그들은 충북도지사, 청주시장, 청원군수, 충북도의회 의장, 청주시의회 의장, 청원군의회 의장, 청주청원통합시민협의회장, 청원청주통합군민협의회장, 충북도 교육감이 각각 추천한 지역의 유지(有志)들이다. 김광홍(전 충북도 정무부지사) 위원장 등 통추위원들은 민의에 의한 행정도 알고 민주적 여론형성과 의사결정의 정도(正道) 등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인사들이다

그런데도 왜 통추위는 ‘우리가 결정하면 된다’는 식의 행정자세를 보이고 있는가. 그 첫째는 통추위가 다룰 수 있는 심의대상이 통추위원들의 자만심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그 심의대상은 통합청주시의 △발전방향 및 전략에 관한 사항 △명칭 및 청사 소재지에 관한 사항 △사무 정비에 관한 사항 △홍보에 관한 사항 △주민통합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사항 △그 밖에 통합추진을 위해 통추위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이다. 이렇듯 통합청주시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보니 통추위가 오버액션을 하고 있는 인상이다.

둘째로, 고질병으로 볼 수밖에 없는 ‘완장권력’ 의식이 부지불식간에 발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통추위(원)란 조직은 청원군과 청주시의 원활한 통합을 성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시적인 기구다. 따라서 그 소임에 통추위란 완장을 채워준 것은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라고 걸어준 ‘의무적 완장’이다. 권위적 일방적 태도로 완장권력을 행사하라고 준 완장이 아니다. 통추위는 이점을 다시 한 번 명심, 낮은 자세로 통합청주시 지역민들의 여론 반영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