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향가 ‘헌화가’는 철쭉을 소재로 한 노래다. 강릉태수 순정공의 부인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었다. 그녀가 남편을 따라 부임지로 가는 도중 절벽에 핀 아름다운 ‘척촉’(躑躅·철쭉)을 보게 된다.

수로부인은 꽃을 갖고 싶었으나 누구도 꽃을 꺾어 바치는 이들이 없었다. 이때 나선 것이 이름 없는 한 노인. 노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에 올라가 철쭉꽃을 한 아름 꺾어 부인에게 바치는 것이다. 노인이 수로부인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사도를 자청한 것이다. 이 설화 때문인가. 철쭉은 ‘사랑의 즐거움’이란 꽃말을 얻었다고 한다.

철쭉에 관한 중국설화는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 중국 촉(蜀)나라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제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 밑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계모의 학대가 심해 형제는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따뜻한 봄날, 굶주림에 지친 동생은 쓰러져 한 마리의 새가 된다. 형을 찾아 헤매던 동생 새는 진달래꽃이 피는 봄이면 고향을 찾아와 형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었다.  “귀촉도(歸蜀道)! 귀촉도(歸蜀道)! (촉나라로 돌아가려나! 촉나라로 돌아가려나)”

새는 너무 슬피 울다 진달래꽃에 붉은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래서 철쭉은 얼룩얼룩 붉은 피가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고 한다. 진달래와 철쭉을 한자로 두견화(杜鵑花) 또는 척촉(擲觸)으로 같이 표기하는데 이 설화를 진달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리의 다른 옛 기록에는 ‘척촉’이란 이름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꾸 걸음을 멈추었다 하여 철쭉의 "척((擲)'에 머뭇거릴 '촉(觸)'을 썼다고 한다. 척촉이 변하여 철쭉이 되었으며 나그네 꽃이라 하여 산객(山客)이란 별명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철쭉 가운데는 일본에서 수입된 품종도 있다. 일본 철쭉이 들어온 역사도 6백년 가까이 된다. 15세기 중반 왜국이 세종대왕에게 철쭉을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학자이자 예술가였던 인재(仁齎)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이란 저서에 ‘왜홍철쭉을 2품으로 높이 평가 했다. 인재는 철쭉을 매우 아름다운 꽃으로 여겨 문방사우와 함께 창가에 두고 완상하였다.

지리산 철쭉을 너무 사랑하여 등반 도중 실족, 명을 다하지 못했던 불우한 여류시인 고정희. 그녀의 지리산이란 시를 보면 철쭉이 파도치는 지리산의 정경이 연상 된다. 그녀의 ‘철쭉제’ 시를 감상해 보자.

“산마을 사람들아 /고향땅 천리 밖에 있어도 /철쭉 핀 노을강 앙금이 보인다 /아름답게 갈라진 노을강 허리 /하늘마저 삼켜버린 노을강 강바닥 /지리산 철쭉밭에 꽃비로 내리고 /즈믄밤 내린 꽃비 꽃불로 타오르고...”

철쭉의 색깔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것 같다. 지리산 철쭉이 붉은빛인 반면 소백산 철쭉은 연분홍이다. 퇴계가 평생 사랑하여 잊지 못하던 단양 기생 두향(杜香)은 연분홍 철쭉을 닮은 미인이었나. ‘두향’이란 이름은 바로 척촉의 향기로움을 뜻한다. 대석학과 아름다운 소녀의 이루어 질 수 없었던 슬픈 러브스토리는 5백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철쭉이 만발한 요즈음 전국에서 철쭉제가 개막되고 있다. 단양 소백산철쭉제는 오는 29일부터 6월 2일까지 5일간 열린다. 전국 철쭉제 가운데 소백산이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무래도 단양 8경이라는 천혜의 절경 때문이리라. 깎아지른 벼랑마다 요염한 연분홍 철쭉이 만발했으니 지금 수로부인이 곁에 있으면 꺾어 달라 하지 않았을까.

단양군은 올해 관광객 1천만명 달성 위업 직전에 있다. 그리고 충북에서 가장 찾아가보고 싶은 관광지가 되고 있다. 김동성 단양군수는 관광도우미를 자청 어깨띠를 두르고 매주말 열차로 단양역에 도착하는 관광객을 직접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열정이 지금 단양을 최고 관광명소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주말 소백산 철쭉의 향에 젖어보는 것도 생활의 윤택함을 더해주는 지혜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