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고려, 조선시대에도 관리들의 정년이 있었을까. 조선 영조 때 편찬 된 증보문헌비고 직관조(職官考)를 보면 신라, 고려 때에도 정년퇴직의 유형인이 ‘치사(致仕)’제도가 있었다고 나온다. 그러나 이 제도가 법으로 적용 된 시기는 조선 태종대. 실록을 보면 영의정 하윤이 치사하는 법을 시행하기를 청하여 임금의 윤허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윤허에 따라 당상관 이상의 관리들은 나이 70이 되면 임금에게 사직 상소를 하고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중신 가운데는 임금으로부터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가 만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고향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한 생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임금의 명에 의해 다시 부름을 받고 관직에 임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명재상 황희가 영의정 자리에 오른 것은 나이 69세. 남들 같으면 모두 은퇴하여 기로소에 들어갈 나이였지만 황희는 건강한 몸으로 세종의 부름을 받는다. 그로부터 18년 간 황희는 나라의 원로로 국정에 간여했다. 70세 자진 치사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 했던 셈이다.

또 고불 맹사성도 80세가 넘은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자문역을 했다. 또 청백리 유관은 87세까지 생존했으며 임금의 멘토역을 했다. 세종은 노경륜가들의 멘토링을 국정에 반영한 나머지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를 이룩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세종대 신포시(申包翅)는 사간(司諫·임금의 잘못을 간하는 직책)이 있었다. 신사간은 70세에 치사하여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시폐(時弊)를 지적하는 상소를 올려 사간으로서 사명을 다한다.

“(전략)...형벌에 고범(故犯)은 작은 것이라도 가볍게 용서하지 아니한 뒤에야 형정(刑政)이 바르게 될 것이옵니다. 사치를 금하여 검소함으로써 쓸 것이 족하게 된 뒤라야 물가(物價)가 저절로 평온하고 백성의 풍속이 후(厚)하여 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천지가 자리 잡히고 백성이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하략).”

이 상소를 받은 세종은 다음과 같이 비답을 내린다. 은퇴한 사간에 대한 현군의 예우를 여실히 드러낸다. “(전략)...간원은 직책이 말하는 길(言路)에 있으므로, 이제 그들은 바의 사실을 자세히 진술하였으니, 내가 깊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이노라.”

근로자의 정년을 만 60세로 의무화하는 법안이 지난 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안이 의결되자 재계는 난색을 보이고 있으나 많은 중년 직장인들은 한숨을 놓을 수 있게 됐다.

재계의 볼멘소리와는 달리 대기업 가운데는 이미 60살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도 상당수에 이른다. 선진국인 독일과 이탈리아 남성 근로자 정년은 각각 67세와 66세. 덴마크도 최근 정년을 67세로 늘렸다. 헝가리도 지난 2010년 62세까지 5년 더 일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도 현행 60세 정년 대상자를 희망자에 한해서 65세까지 의무 고용하도록 하는 제도가 올해부터 도입됐다. 60세부터 지급되던 연금을 65세 이후에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희망자에 한해 오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 고용을 법제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80세 이상을 사는 요즈음 시대, 정년 60세도 길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60세는 노인 축에도 들지 않는다. 문호 괴테도 회갑 이후의 삶을 ‘제3의 청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60~80세에 가장 많은 작품을 썼다. 정부는 정년연장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해주고 기업과 사회 모두가 경륜가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세종의 지혜’를 실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