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계룡산 정상 청량사터에 속칭 ‘남매탑’이 서 있다. 전문가들은 이 쌍 탑의 조성시기를 고려초기로 내다본다. 그런데 탑에 얽힌 설화를 보면 백제 왕족 출신의 남자와 신라 상주 처녀가 호랑이의 인연으로 남매가 된다는 얘기다.

백제 멸망 후 계룡산에 왕족 출신인 한 스님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마리의 호랑이가 암자를 찾아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떠나지를 않았다. 스님이 호랑이를 살펴보니 목에 갈비뼈가 걸려 있지 않은가. 스님은 호랑이 입에 손을 넣어 갈비뼈를 빼내어 주었다. 감동한 호랑이는 어느 날 암자 앞에 묘령의 아름다운 처녀를 물어다 놓았다.

스님은 처녀를 극진히 간호한다. 그리고 처녀에게 호랑이에게 잡혀 온 까닭을 물었다. 처녀는 자신은 경상도 사벌국(상주)에 살았으며 신혼 첫날밤 소피를 보러 밖에 나왔다가 호랑이에 물렸다고 말했다. 처녀가 암자에 머물며 몸을 회복하자 스님은 이제 절을 떠나라고 했다. 그러나 처녀는 집에서는 이미 죽은 목숨으로 알고 있을 텐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후 스님은 상주 처녀와 결혼하여 잘 살았다는 얘기도 있고 또 남매의 의를 맺고 부처만을 신봉하며 살았다는 설화도 채집된다. 그래서 두 개의 동, 서 탑으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누이탑이라고 불리는 이 아름다운 탑은 재미있게도 하나는 신라탑 모양을 하고 있으며 하나는 백제탑 양식을 지니고 있다. 백제탑은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고 있으며 하나는 경주지방 신라고토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일반형 석탑이다.

10세기 견훤의 후백제는 전주를 중심으로 한 백제 구토에서 복국(復國)의 기치를 올린다. 그런데 이 시기 많은 고토에서 백제에 대한 문예부흥의 기운이 일어난다. 백제 석탑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계룡산 남매탑의 경우도 그렇고 익산 왕궁리, 충남 서천 비인 삼층석탑등이 그 한 예다. 청원 가덕면 인차리, 문의 덕유리등 절터에서는 고려시대 절터에서 백제 와당을 본뜬 기와가 찾아진다. 이들 와당들은 부여 정림사지, 금강사지에서 나온 전성기 백제 와당을 너무 닮고 있다.

남매탑이 세워졌던 시기 고려와 후백제와의 전쟁은 그칠 줄 몰랐다. 충청도지역 회인, 연산 등 지역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이 끝난 후 계룡산 불자들은 힘을 합해 동.서 화합을 상징하는 백제 - 신라 두 탑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백제 왕족 스님과 상주 처녀의 남매설화는 이래서 만들어진 것인 지도 모른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민족상쟁을 막아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은 장군 김유신이 세상을 떠나면서 문무왕과 나눈 마지막 유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이제 삼한이 통합되었으니 소강상태는 되고 다른 마음(전쟁)이 없게 됐다’고 소회를 밝힌 김 장군의 유언은 신라인들의 민족통합에 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전쟁은 쓰라린 것이고 승자나 패자나 상처가 너무 큰 것이다. 김 장군은 전쟁의 종식을 보고 문무왕의 손을 잡은 채 두 눈을 감은 것이다.

대역사 불국사의 조영도 바로 통일 신라 후 이런 민족의 염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도 금당 앞에 놓여 진 두 개의 탑이 다른 양식으로 조성되는 것이다. 하나는 장중한 신라양식을 대표하는 석가탑이고 하나는 백제 양식이 가미된 이형(異型)의 다보탑이다.

다보여래는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난다는 과거불. 석가여래는 현재의 불을 상징한다. 다보, 석가탑이 이미 망한 과거 백제의 영혼을 위무하며 현세인 신라의 국운과 태평을 기원한 것인가. 다시는 민족상쟁의 비극을 막아보기 위한 신라인의 염원도 담겨져 있는 것만 같다.

석가탑이 수리를 위해 1천여년 만에 처음 해체 복원되고 있다. 신문지면을 장식한 장엄 사리장치 보다는 북한의 무모한 불장난으로 언제 참극이 벌어질지 모는 이 시기 과거 신라인들의 전쟁종식의지가 새삼 상기된다. 북한은 하루빨리 민족의 파멸을 재촉하는 핵 도발의 무모함을 버리고 평화의 대열로 나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