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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봤네, 그냥 봤네이장종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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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18  15: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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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 그럴까? TV를 보면서 잠시도 한 채널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닐까. 마치 초원의 풀을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처럼. 아마도 그럴 것이다.

차가운 슬픔, 뜨거운 웃음, 강렬한 자극을 탐해서 수많은 채널을 헤맬 것이다. 그러다 애국가 소리를 자장가 삼아 소파에서 잠이 들 것이다. 도시 젊은 직장인들의 서글픈 일상이 그럴 것이다.

장기하의 노랫말이 젊은 백수들의 슬픈 단상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눈이 시뻘개 질 때 까지 TV를 봤네. 아! 그냥 봤네...왜 자막이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는, 또 보다보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어서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다가 꺼버리고 나면, 아! 그냥 봤네.

” 그렇다. 아픈 청춘들의 자기위안이자 불안으로부터의 도피다. 정서적 허기를 달래기 위한 몸짓이다.
 TV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는 것’이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뭔가 빈 것 같은, 그래서 얼큰한 라면 국물로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은, 그런 몸 안의 허기에서 채널을 돌린다.
 
그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일종의 정서적 허기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부정적 감정이 커질 때 정서적 허기를 느낀다고 한다. 한때 ‘개그콘서트’를 제외하고 지상파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던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다시 복귀하고 있다. 웃음을 통해 허기를 달래고 정서적 위안을 주기 위해서란다.
 
전과 다른 점은 정치 풍자 코미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정치가 코미디니까 코미디가 정치를 한다’라고 일갈 한다. 그러고 보면 지난 몇 년간의 국내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정서적 허기를 키웠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최근까지의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그런 정서가 잘 드러난다. ‘나꼼수’ ‘나가수’ ‘안철수’ ‘SNS' ’청춘콘서트‘ ’도가니‘ ’세시봉‘ 써니‘ ’아프니까 청춘이다‘ ’2040세대‘ ’99%‘ 등. 학자들은 이런 현상의 근저에는 소통부재와 권위주의, 양극화와 세대격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젊은이들의 불안심리가 자리한다고 지적한다.
 
청년실업자, 일명 백수들은 자신들의 절망감을 위무해주고, 불만을 해소시켜줄 누군가 부드러운 말 짓과 몸짓이 절실하다. 그 만큼 그들에겐 정서적 허기도 크다. 그들은 향수와 위로, 참여와 소통에서 정서적 만족을 얻는다.

그래서 폐쇄적이고 일 방향적인 기존 미디어보다는 쌍 방향적인 교감이 가능한 SNS에서 대안을 찾는다. 이제 젊은이들은 페이퍼나 브라운관이 만들어 내는 순치된 여론이 아니라 내 손안의 작은 휴대폰이 쏟아내는 뒷담화의 은밀한 내러티브를 더 즐기고 싶어 한다.
 
단순히 듣고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하고 싶어 한다. 참여하고 감정과 정서 진실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권력은 시장에서 나온다’고 했다. 자본권력을 두고 이른 말이긴 하나 원래 전통적인 시장은 재화와 정보가 교류되고 확산되는 공간이란 점에서 권력의 탄생과 무관치 않다.
 
미디어의 탄생도 그 연장선에 있다. 동굴에서 우물가로, 시장과 광장에서 전통적 미디어인 신문이나 라디오, TV 브라운관으로, 그리고 이제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왔던 미디어 권력이 다시 내 손안으로 들어 왔다.

SNS가 그 두터운 기존 미디어의 벽을 허물고 있다. 위기를 느낀 자들이 심의의 잣대로 규제를 하려 한다. 그러나 진실과 양심의 메시지는 그 어떠한 촘촘한 그물로도 거를 수 없다. 정보는 힘이 있는 데로 흐른다.

‘할일 없이 TV나 보고 자빠졌네’ 그래도 ‘눈이 벌개 질 때 까지 그냥 봤네’ TV의 존재이유가 바로 이와 같다면 TV 속 볼 거리를 만들어 내는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보지 않으면서도 TV는 켜 놓고 산다고 한다. 왜? 집안에 혼자 있는 게 적적해서, 알 듯 모를 듯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여인네의 악다구니 소리를 저 건너 방에서 그냥 스쳐 들으면서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위안을 얻을 수 있기에... 그들을 위해서 나는 내 이름을 프로그램 말미에 적어 올린다. “다음 시간에 더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끝 인사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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