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라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받은 성폭행피의자가 부당함을 호소하며 항소했다. 약물치료를 도저히 따를 수 없다며 명령의 철회를 주장하고 나선 피고인의 죄질을 일단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서른 한 살의 이 남자는 미성년자 5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위반’이란 긴 죄명이다.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성충동 약물치료 3년 등을 명령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 명령을 받은 것이다.

3월 26일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피고의 변호인은 "피고인을 전형적인 성도착증 환자로 볼 수 없다"면서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의 철회를 강력히 주장했다. 치료 후 성 불능 등 임상결과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국내 1호' 치료 명령 대상자가 된 점에 동의할 수 없다는 항변이다.

치료 후 성 불능 등 임상결과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주장이 참으로 뻔뻔스럽다. 물리적 거세라도 달게 받겠다며 반성해야 할 죄질이거늘, 성 불능이 걱정이란 말을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내뱉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성충동 약물치료가 과연 성 불능을 걱정할 만큼 강력한 치료법인가에 대해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주기적으로 주사를 통해 남성호르몬 생성을 억제시키는 성충동 약물치료를 ‘화학적 거세’라고 칭한다. 그러나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즉시 성욕을 회복할 수 있으므로 거세라는 표현은 당치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화학적 거세라는 용어가 과장을 넘어 ‘뻥 수준’이란 말씀이다.

심지어 ‘화학적 거세’ 시행 중인 성범죄자가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면 즉시 정상적인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그래서 말만 거창한 화학적 거세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독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 8개국과 미국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7개 주에서 화학적거세인 약물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폴란드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치료 대상자의 동의를 받아 약물치료를 하고 있지만 미국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범죄자의 동의 없이 무조건 실시한다.

오죽하면 화학적 거세 명령을

외과적 시술로 확실히 처벌하는 거세가 물리적 거세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미개국이나 후진국의 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독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선 성범죄자가 자신의 성충동을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요청할 경우 아예 화근의 싹을 없애버리는 물리적 거세를 실시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행했던 궁형(宮刑)이 바로 생식기에 가하는 형벌이었다. 목숨을 끊는 사형(死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생살에 죄명을 찍어 넣는 경형(黥刑)에 궁형(宮刑)을 합하여 5형이라 했는데 생식기를 거세하여 성불구자로 만드는 궁형을 사형에 버금가는 극형으로 두려워했다.

궁형은 단순히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생살을 도려내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자칫 치명적일 수 있어 독극물 등에 하체를 담그게 하여 서서히 독으로 기능을 정지시켰다. 외형은 멀쩡해보여도 생식은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물리적 거세라기보다 진정한 화학적 거세라는 것이 맞을 듯싶다.

중국 최고의 역사서를 집필한 사마천이 한무제의 미움을 받아 궁형을 받았던 사실은 유명하다. 궁형에 좌절하지 않고 빛나는 사기를 완성한 그의 의지가 놀랍지만, 혹자는 그가 궁형을 받았기에 다른데 눈을 돌릴 데가 없어 집필에 몰두했을 것이라 너스레를 떤다.

일부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화학적 거세가 개인의 기본권인 생식권을 단기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위헌 논란의 시비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성범죄자의 인권을 배려하기엔 그들의 죄가 너무 더럽고 극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