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산업단지에서 연속적으로 유독물질 누출사고가 터지면서 시민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청주산단은 유독물질을 다루는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자리한데다 인근에 대형 백화점과 아울렛, 아파트촌이 건립돼 있어 유독물질사고가 발생할 경우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청주산단을 ‘화약고’에 비유하고 있다.

◇ 산단내 유독물질 취급업체 31곳= 현재 청주산단에 입주한 기업 365개(임대공장 포함) 가운데 유독물질 취급업체는 31개사에 달한다. 이 가운데 13개 업체가 소방서의 중점관리대상 업체다. 취급량이 많고 다양한 유독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3개 업체는 ㈜하이닉스반도체1공장, ㈜하이닉스반도체3공장, 베올리아워터산업개발, ㈜LG화학청주공장, LG㈜청주공장, LG이노텍청주공장, 매그나칩반도체, ㈜이앤디드, ㈜한국종합화학, 인듐코퍼레이션코리아(유), ㈜에이텍정밀화학, ㈜지디, ㈜심텍이다.

취급 화학물질은 염소, 불화수소, 황산, 염산, 이소포론, 톨루엔, 메틸렌, 암모니아 등이다. 연간취급하는 화학물질량은 심텍이 황산 등 18종 1만5870여톤, LG이노텍청주공장이 1만4000여톤이다. 나머지 중점관리대상 업체도 연간 화학물질 사용량이 수백톤에서 수천톤에 달한다. 

◇ '은폐 의혹' 하이닉스 염소 누출= 지난 22일 오전 10시25분쯤 청주산업단지 내 SK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에서 염소가 누출됐다.

충북도소방본부와 이 공장 관계자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반도체 청주1공장 M8라인 비메모리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배관 교체 작업을 하던 중 농도 1.8ppm 염소 0.17g이 10초간 1ℓ가량 누출됐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직원 4명이 염소 가스가 지나가는 배관 교체공사를 하고 있었다. 배관 교체 작업은 밸브를 잠그고 해야 하지만 당시 작업은 밸브를 연 채로 했다고 공장 관계자는 전했다.

하이닉스 측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즉시 배관을 잠근 채 이들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당시 건물 내에 있던 직원 100여명도 함께 대피했고, 해당 생산라인 작동도 중단됐다.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4명은 사고 당시 마스크를 쓰는 등 안전장비를 착용했으며, 사내병원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은 결과,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하이닉스 측은 전했다. 그러나 하이닉스 측은 이 같은 사고 사실을 아예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충북도소방본부는 이날 오후 2시25분쯤 '염소가 누출된 것 같다'는 신고접수를 받고 뒤늦게 현장에 출동해 수습에 나섰다. 사고가 난 지 4시간 만이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 관계자는 "사고자가 없었고 경미한 누출이라 신고의무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 유독물질 잇단 사고에 불안 가중= 청주산단 내 유독물질과 관련된 사고는 이번까지 벌써 4번째다.

지난 2월 18일 낮 12시 37분께 청주산단 내 SK이노베이션 청주공장에서 근로자 P씨(29) 등 2명이 가스를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은 휴대전화 배터리 제작에 쓰이는 필름 제조 공정을 살펴보던 중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인 메틸렌클로라이드(MC·CH2Cl2) 가스를 흡입했다.

P씨 등은 밀폐공간에서 무인공정으로 이루어지는 필름 제조공정을 지켜보다가 필름이 끊어지자 이를 잇기 위해 작업실 안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밀폐된 작업실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방독마스크와 안전안경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15일 오후 9시50분경에는 청주산단 내 ㈜GD에서 불산이 누출됐다. 당시 작업을 하던 현장 근로자가 넘어지면서 발로 밟은 PVC파이프가 깨져 불산 2500ℓ가 누출된 것이다. 이 업체는 지난해 8월에도 유독가스가 누출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LG화학 청주공장에서 폐다이옥신 용기가 폭발해 8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설계 공정을 따르지 않은 무리한 공장 설계 변경과 안전장비 미착용 등 안전 불감증이 빚은 참사였다. 

◇ 잦은 사고 방지책 없나= 첨단업종이라고 공해가 없는 산업처럼 여겨진 IT업체에서 유해물질 사고가 터지면서 정부와 지자체에서 실태점검과 방지책 마련에 나섰다. 청주산단의 잇단 사고는 직원들의 부주의가 주원인으로 사고조사 결과 나타났다.

사고발생 후 늑장신고 또는 은폐의혹이 일면서 사업장의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염산, 불산 등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사고예방은 물론 사후 대처에도 철저해야 하지만 일련의 사고발생과정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전문가들은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의 시설투자 등 예방책 마련, 종사원들의 철저한 안전교육, 화학사고에 따른 완벽한 대응시스템 구축 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