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 설화의 대표격은 청원 북일면 초정리 구녀성(九女城)에 전해 내려오는 딸들의 비극을 담은 얘기다. 가야산 구물레 구장군 설화는 쌍둥이 남매가 주인공이지만 이 설화에는 딸이 아홉 명이나 등장하고 있다. 두 이야기의 최종 승자는 아들이며 심판관인 어머니는 꾀를 부려 아들을 살리고 딸들을 모두 죽이고 만다.

옛날에는 딸이 태어나면 버리는 기아(棄兒) 풍습이 있었다. 고전 심청전에도 심학규가 아내를 잃고 어린 청을 어렵게 기르자 마을 장승상댁은 자신의 수양딸로 삼으려 한다. 가난한 집에서는 여자아이를 양반집 여종으로 팔기도 하고 수양딸로 주어 연명토록 했다.

6.25 전쟁직후 생존이 어려워지자 자식이 많은 가정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식모살이로 나서게 하거나 고아원에 맡기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들만큼은 엄마 품에 안고 길렀으나 많은 딸들이 버려져 불행한 인생을 살아 온 것이다.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전란으로 빚어진 기아풍속의 트레저디(tragedy) 현대사를 생생히 증언해 주었다.

서사무가(敍事巫歌)인 ‘바리공주’도 전설 속에 등장하는 한 왕국의 버려진 딸을 소재로 한 굿이다. 공주는 대왕의 일곱째 딸로서 낳자마자 버려진다. 어느 할멈의 수양딸로 자란 공주. 장성하여 부모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약을 구하기 위해 삼신산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자신을 버린 부모지만 생명을 구해주기 위해 헌신한다는 효성(孝誠)을 담고 있다.

남아선호 사상은 전통적 유교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모입장에서 아들은 노동력이요 노후 봉양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인 반면 딸은 한번 시집가면 삼종지의(三從之義)에 따라 출가외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삼종지의란 ‘여자는 어릴 때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하고, 성장하여 혼인을 하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을 보면 동방(한반도를 가리킴)은 기수(奇數)로 따져 남자보다 여자가 많이 출생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과거 삼국시대에도 남자보다는 여성의 수가 많았다고 한다. 옛 기록에도 여자가 많은 탓에 국경지역에서는 수(戍·변방을 지키는 일)자리와 혹은 구녀성 설화가 암시하듯 축성시 노동력으로도 동원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복을 입은 여자 전사들이 전투에서 남자 전사보다 더 용감했다는 사례도 있다.

옛날 동방에 여자들만 살았던 여인국(女人國)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실학자 이익(李瀷)도 여인국의 실재를 자신의 저서인 성호사설(星湖僿說)에 기록하고 있다. 여인국은 한반도 어디에 있었을까. 제주도가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三多)로서 여인국으로 와전됐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며 왜(倭) 야마도 지방에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세종실록을 보면 최부(崔溥)가 남해 바다에 표류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자 조정에서 여인국의 실체에 대해 사문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여성 입김 세어지는 '신 여인국'풍속도

신문보도를 보면 최근 한국의 전체 인구에서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여초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어지고 갈수록 여아(女兒)를 선호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참여와 역할이 강화되고 입김이 점점 세어지는 ‘신 여인국’의 풍속도를 보여준다.

농와지경(弄瓦之慶)이라고 했던가. 딸을 낳으면 실패를 주어 축하한다는 중국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요즈음 젊은 부부가 딸을 낳으면 주위에서 더 많이 축하해 준다고 한다. 딸 가진 부모는 해외여행 가고 아들가진 부모는 제주 여행 간다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남아선호의 전통인식이 이제 여아집착의 세태로 변모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미래에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많아진다면 신랑하나 가지고 쟁탈전을 버려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는 것은 아닌지. 아무래도 남녀 성비가 비등한 사회가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천국’임을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