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읍성은 1천3백여년 서원(西原)의 역사를 지켜온 주 무대였다. 그러나 백년 전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비운을 당했다. 이 시기에 임진왜란 첫 접전지 동래부성을 위시 한양도성, 대구읍성, 청주, 충주읍성, 전주읍성 등 전국의 많은 성곽들도 같이 헐렸다. 지금 남아 있다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됐을 유적들이 깡그리 사라진 것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자신의 나라 문화유산이라면 돌 하나라도 보물처럼 여기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왜 한국의 도성은 물론 많은 읍성들을 헐어버린 것일까. 청주, 충주읍성은 임진왜란과 한말 항왜(抗倭) 기치를 올린 국난극복의 성역(聖域)이다. 중봉 조헌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들은 청주성에 진주했던 왜병들과 싸워 이들을 통쾌하게 몰아냈다. 이 전투는 임란사에 남을 육전에서의 첫 승리로 기록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일본이 도시계획이란 미명하에 청주읍성의 철거를 통해 우리민족의 규합을 막고 항일의지를 말살하고자 이 같은 일을 획책다고 해석한다.

청주읍성의 역사는 7세기 후반 통일신라 신문왕(神文王)대로 올라간다. 역사학자들은 청주에 설치됐던 서원소경(西原小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들을 피력하고 있다. 필자는 한 논문에서 신문왕 시기 소경의 초치(初置) 장소를 상당산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곳의 공남문(控南門)아래 경작지에서 수습된 ‘사탁부속장지일(沙啄部屬長池馹)’이란 명문 기와는 서원경성 장소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유물로 평가 되었다. 사탁부는 바로 신라 육부 중 하나이며 ‘장지일’은 장지역(長池驛)으로 해석된다. 이 기와는 삼국사기 신문왕조에 보이는 소경설치(685AD)와 육부호민(六部豪民)의 서원경 이주를 확인 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사료로 평가 되고 있다.

그러면 왜 경주 사탁부 사람들은 청주지역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상당산성에 관아를 둔 것일 까. 상당산성은 방어와 취락,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가장 적합 한 곳 이었다. 당시는 삼국 통일 직후여서 백제유민들의 반 신라감정이 완전 해소 된 시기가 아니었다.

청주읍성자리가 서원소경 관아로 잡은 것은 아무래도 통일신라 정국이 안정된 8세기 중반이 아니었을까. 상당산성에 웅거했던 신라 귀족들은 무심천 가까운 읍성자리로 내려와 토성을 쌓고 관아를 지었으며 사찰을 조영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조성된 탑동사지 석탑, 운천동 통일신라 불교유적 등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겠다.

고려사 기록을 보면 태조 왕건 대 청주읍성의 나성(羅城)이 축조되었다고 돼 있다. 통일신라대 부터 내려져온 토성에 붙여 왕성형태의 나성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읍성 내에 대찰 용두사(龍頭寺)가 지어졌고 철당간지주(鐵幢竿支柱)의 조성이 이뤄졌다. 고려시대 읍성은 청주목의 관아로서 통치의 중심이 되었고 청주의 지식인들과 장인들은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는 대업을 이룩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후기에 그려진 ‘청주읍성도’를 보면 성내 도로망은 고대의 경성방리제(京城坊里制)를 모방, 남문에서 북문까지 주작대로가 보이고 소로는 방격(方格)으로 조성한 것이 나타나고 있다. 왕도(王都)의 품격을 갖춘 통일신라시대 소경의 모습을 조선시대에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록을 보면 청주읍성은 토성이었던 것이 조선 성종18년(AD1487) 돌로 개축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제에 의해 철거 된 석축의 성은 바로 조선시대에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것이다. 철거당시 많은 석축들이 제방의 돌로 쓰였거나 혹은 민가의 초석으로 실려 나갔다.

청주 자긍심 회복하는 사업에 관심과 지지를

청주시가 앞으로 남석교를 발굴하고 옛 읍성 서벽 일부를 복원한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청주 읍성의 복원과 지하에 매몰돼 숨 쉬지 못하는 남석교(南石橋)의 발굴은 역대 시장들의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숙원사업은 천문학적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문화재에 남다른 전문지식과 애정을 가진 한범덕시장은 용기를 내어 이 사업을 착수 한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 젊은 시절 문화재 전문기관에 근무한 적이 있다. 청주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두 가지 사업에 박수를 보내며 시민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