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계사(癸巳)년 뱀띠 해. 성서에서 뱀은 사탄으로 지목되지만 동양에서는 지혜의 동물이자 설화 속에서는 신(神)으로 까지 추앙받는다. 주인공은 중국의 최고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창조의 여신 ‘여와(女媧)’. 얼굴과 상체는 사람의 몸이고 하체는 뱀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형상은 멀리 서역 실크로드 벽화에서도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19세기 초 영국의 고고학자 스타인. 그가 중국 신강성 투르판 분지 모래밭에서 고분을 발굴했다. 그런데 여기서 7세기 전반에 그려진 위구르 귀족의 그림을 발굴한 것.  비단에 채색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으로 이루어진 남녀상이다. 투루판 유물은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도 찾아져 지난 2003년에 특별전을 열어 일반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런 형상이 고구려 수도였던 집안(集安)에서도 나타난다. 왕궁지에서 발견된 와당(瓦當)에서 얼굴은 사람이고 하체는 뱀의 형상을 한 무늬가 보이는 것이다. 산해경의 주인공 천모(天母) 여와의 신화가 대륙의 동서북부에도 널리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견우 직녀는 몸은 뱀이며 큰 날개를 단 기인이다. 왕의 시신을 지켰던 사신도(四神圖)에도 뱀이 수호의 신으로 등장한다. 뱀과 거북이 엉켜 다투는 신비로운 그림 현무도(玄武圖)가 그것이다.

신라 박혁거세와 경문왕은 뱀과 관련된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경주 박혁거세 능을 ‘오릉(五陵)’ 사릉(蛇陵)’이라 한 것은 뱀의 방해로 시신을 합장하지 못하자 오체(五體)를 각각 나눠 장사 지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화랑출신인 경문왕은 말년에 뱀이 없으면 스스로 잠이 들지 못했다고 한다.

뱀은 제왕을 상징하는 용(龍)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천안 직산에 가면 사성(蛇城)이 란 이름의 고대 토성이 있다. 여지승람에 보면 ‘사성’은 고구려가 직산을 점령하고 붙인 이름이다. 고구려는 왜 직산을 ‘사성’이라고 부른 것일까.

직산은 백제 초도(初都) 위례성으로 비정되며 시조 온조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백제는 고구려를 ‘뱀’으로 호칭했다.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과 감정적인 대립을 하면서 중국 위나라에 표(表)를 올릴 때 장수왕을 ‘머리가 긴 뱀’에 비유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분노한 장수왕은 5만 기병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위례성을 침공, 탈출하는 개로왕을 사로잡아 구리 아차성(阿且城) 밑에서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이 기세로 장수왕의 고구려 기병들은 천안 직산까지 파죽지세로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고구려인들은 직산을 ‘사성’이라 이름 한 것인가.

왕성을 ‘사성’이라고 한 것은 삼국사기 기록에도 보인다. 즉 백제가 하남위례성을 축조하는데 동쪽의 숭산(崇山)에서 서쪽의 사성(蛇城)에 이르기까지 제방을 쌓았다고 한 것이다. 왕이 살고 있는 성을 일명 ‘사성’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서양에서도 뱀은 제왕의 상징으로 여겼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에는 뱀이 보관의 정면을 장식했는데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세기의 미녀 클레오파트라는 평소 목에 뱀을 칭칭 감고 살았다는 일화가 전하며 로마와의 전쟁에 패망하자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생을 마감했다는 얘기는 너무 유명하다.

구렁이 집안 들어오면 길조로 해치지 않아

우리의 민속에 나타난 뱀은 죽지 않는 동물이며 풍요와 지혜의 상징이다. 징그럽지만 업(業)으로 여기기도 했다. 우리 충청도에서는 구렁이가 집안에 들어오면 부자가 될 길조라고 하여 해치지 않았다. 구렁이를 죽이면 대신 큰 화가 미치며 꼭 복수를 한다고 믿은 것이다.

2013년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수출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세계경제의 회복 조짐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북한 핵과 영토분쟁으로 동북아 안보정세도 불안하다. 2월25일이면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 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다. 대통령은 ‘여와’ 같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대통령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국민들은 합심하여 난국 극복의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