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신라는 6~7세기에 들어 경쟁적으로 대규모 불사(佛事)를 벌였다. 백제는 동양최대라 할 수 있는 전북 익산에 미륵사를 짓고 신라는 왕도에 황룡사를 건립했다. 재미있는 것은 두 개의 거대 사찰이 모두 신라 진평왕의 딸 두 공주의 설화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륵사는 무왕(武王) 비(妃)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한다. 경주 황룡사는 선화의 언니라고 하는 선덕여왕 대 90년이 소요된 대역사의 공정을 마감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익산 미륵사에는 신라에서 유행했던 돌로 다듬은 쌍탑의 오층석탑이 세워지고 경주 황룡사에는 백제에서 유행한 목조탑이 조영되는 것이다. 어째서 이처럼 바꿔치기 건축소재의 탑이 조영된 것일까.

백제 가람은 전통적으로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 왕도 부여에 남아있는 절터를 보면 큰 규모가 없다. 큰 규모의 절터로 확인 된 부여 규암면 금강사지(金剛寺址)도 미륵사지보다 스케일이 훨씬 작다. 그래서 의문점이 많다. 왜 무왕 대에 왕도(王都)가 아닌 별도(別都)에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절이 갑자기 등장한 것인가.

몇 년 전 탑 기단부에서 출토된 사리장치에서 나온 명문(銘文) 금동판에는 선화공주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화주(化主.발원자)가 백제 명문 귀족인 사택지적(砂宅智積)의 따님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따님을 선화공주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또는 당초 선화공주에 의해 착수된 것이 후에 사택지적의 따님 대에 이르러 완공을 보았다는 견해도 있다.

사택지적은 신라에서 백제로 이주한 신흥귀족은 아니었을까. 사택은 신라 육부호민의 하나인 사탁(沙啄)과 비슷한 음이다. 신라 사탁부속에 살던 일단의 귀족 집단이 백제와 관련을 맺은 것은 5세기 후반 동성왕(東城王)대. 진흥왕은 동성왕이 혼인을 요청하자 이찬(伊飡)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낸다. 이 시기 공주를 따라 비지 집단이 백제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이런 연유로 미륵사는 돌을 잘 다듬는 신라 장인들의 협력으로 황룡사처럼 큰 규모로 조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황룡사 목탑은 선덕여왕 대 2년이 걸려 완공됐다. 그런데 이 목탑을 설계한 장본인이 백제 장인(匠人) 아비지(阿非知)라는 인물이다. 당시 신라에서는 거대한 목탑을 조영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치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국경분쟁이 치열했으며 서로 뺏기고 뺏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선덕여왕은 많은 금은보화를 마련 백제에 장인의 파견을 요청한 것이며 백제는 최고의 장인을 보내 불사를 도왔다.

황룡사 9층탑의 조성은 여왕답지 않게 주변 여러 나라를 복속하겠다는 의지가 어리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건립동기가 신라 주변국의 침략을 막고 이들을 복속시키자는 데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층은 일본(日本),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4층은 탁라(托羅.제주), 5층은 응유(鷹遊.백제를 낮추어 부른 이름), 6층은 말갈(靺鞨), 7층은 거란(丹國), 8층은 여적(女狄), 9층은 예맥(穢貊)실로 되어 있다. 동쪽의 작은 나라 신라가 일본은 물론 대륙 중화까지 복속을 획책하고자 하는 호기를 담고 있다.
이 탑은 몽고의 침입 때 소실되고 말았다. 대륙제패의 기상을 보인 것이니 몽고병들이 그만 둘리 없었던 것 같다. 동양 최대의 웅자로 가까운 왜국이 가장 부러워했다는 신라 심벌은 사라지고 약 8백년간 공허한 빈터로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민족 화합과 국격 상승의 전기로 승화 되길...

황룡사 9층탑이 2025년까지 창건당시의 똑같은 크기와 모습으로 복원된다고 한다. 경주시민들의 오랜 숙원이 이제 풀리는 셈이다. 아니러니 한 것은 이 목탑의 축소모형 작업에 참여한 이들이 백제 고토 부여군 규암면에 소재한 전통문화대학이다. 국경을 초월, 불력으로 정토(淨土) 세계를 기원한 ‘아비지’의 환생 같은 생각이 든다.

황룡사 9층 목탑의 복원은 아직도 동서 갈등이 시그러지지 않은 이 시대 민족 화합의 계기이자 국격 상승의 전기로 승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