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는 것을 즐기고 여행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게다. 이런 습성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옛날 양반 소년이 성장하여 글을 쓰고 읽을 줄 알면 먼저 하는 일이 시(詩) 짓기. 학문은 시로 부터 시작되며 고시를 음송하는 것을 한껏 풍아(風雅)로 여겼다. 삼삼오오 무리가 이뤄지면 산천을 찾아 자리를 펴고 시를 짓고 읊는 것이 일이었다.

매화가 피어오는 춘절이 시작되면 사류(士類)들은 마음이 설렌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에 마음을 뺏기는 것이다. 하인을 시켜 나귀 등에 술항아리를 싣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나선다. 고관대작이면 스페셜로 창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생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지필묵을 꺼내 시를 지어 간직한다. 일종의 시여행(詩旅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시인이 많았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글을 읽는 사람이면 모두 시인이었고 다투어 시집을 냈다.

명산대천을 찾아 유람 여행하는 기풍은 선비만이 아니었다. 비교적 바깥출입이 자유스러웠던 기생들은 보디가드인 기둥서방을 대동하고 여행을 떠났다. 개성명기 황진이는 무려 6년간을 여행했다고 한다. 황진이가 사랑한 남자는 당대 선전관을 지낸 소리꾼 이사종. 두 사람은 송도를 떠나 도보로 수만리길 조선의 영토를 답사한다. 소리꾼과 함께 했으니 황진이는 음악여행을 한 셈이다. 이사종과 행복한 사랑여행의 소산일까. 그녀는 다음과 같은 그윽한 명시를 남겼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조선중엽 여류시인 옥봉은 양반의 첩이었는데 여자가 시를 짓는다하여 소박을 맞았다. 그래서인지 명산을 여행하며 주옥과 같은 명시를 많이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군데 의지 할 곳 없던 그녀는 동해 바닷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선 영조 때 정란이란 선비는 지독한 여행광이었다고 한다. 30세에 학문을 포기하고 괴나리봇짐을 싸 팔도를 유람했다. 그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했는지 이렇게 술회했다고 한다.

“북쪽으로 청나라, 남쪽으로 왜국까지 갈 수만 있다면 천한 노비가 되는 굴욕이라도 사양치 않겠다”

당나라에서 돌아와 부성태수로 지내던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은 전국을 여행하며 만년을 살았다. 나라가 어지러운 이유도 있었지만 본성이 여행을 즐기고 명승을 사랑한 때문이다. 지리산 소백산 대표적 사암 유적을 가보면 고운이 살다간 사연들이 설화로 많이 남아있다. 

외래 관광객이 1000만명 시대, 해외로 나간 여행객은 1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 돼 한국인의 전통적인 여행열기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중국 수도 베이징, 국제도시 상하이 길림성 장춘 등 공항 출·입국대 앞에 길게 줄서있는 여행객들은 한국인이다. 이제는 아프리카, 남미, 세계 어디를 가도 관광차 다니는 한국인을 만난다.

한국 호감도 선진국 비해 낮아

그러나 우리여행객들에 대한 호감도는 아직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다. OECD 회원국으로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면서 여행 에티켓은 크게 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관광객들에 대한 외국의 불만은 대략 다음과 같은 행태다. 호텔과 기내 등의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다투는 사례, 촬영 금지구역 사진촬영, 흡연 금지구역 내 흡연, 안내원·종업원들을 비하하는 언행, 해외 동포들 앞에서의 졸부행세 등 과시욕 등이다.

풍아한 여행은 못 되어도 외국인들이 호감을 살 매너는 지녀야 한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다. 또한 1천만 관광객 시대 다시 찾고 싶은 한국, 우리를 오래 기억하는 나라로 만들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