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대선 야권 단일화 후보를 놓고 맞장을 뜨고 있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중 누가 페이스 메이커가 될까.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페이스 메이커란 용어를 살펴보기로 한다. 영어로 페이스(Pace)는 ⑴장거리 경주나 마라톤 등에서 달리기의 속도 ⑵일의 진척 상황이나 생활의 리듬 ⑶야구에서 투수가 던진 공의 속도 등을 뜻한다.

이 페이스 말에 메이커(Maker)란 단어를 합성한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되면 육상경기 분야에서는 중·장거리 경주에 있어 자신의 능력보다도 빠른 페이스로, 또는 다른 선수의 목표가 될 만한 스피드로 뛰어 다른 선수를 유도하거나 앞질러 가는 러너를 의미한다. 페이스 메이커들은 단순히 속도를 빨리 내게 하는 목적보다 구간별로 페이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하면서 선두그룹의 속도를 더 올리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알반적으로, 페이스 메이커들은 수준 높다고 평가된 마라톤 선수들 보다는 한 단계 아래급 선수들이기 때문에 하프코스를 뛰고 나면 체력이 바닥나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특히 마라톤에 있어서의 페이스 메이커는 단순한 빠른 속도 추구보다 각 구간별로 주축선수의 페이스를 맞춰 주는 역할을 한 후 레이스 대열에서 이탈하는 게 상례다. 이처럼 페이스 메이커란 마라톤, 수영 등에서 다른 우승후보의 기록단축을 위해 전략적으로 투입된 “오로지 남을 위하여만 달려야 하는 ‘찬조인생’”인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 메이커가 마라톤의 마지막 고비라는 30Km 지점을 통과, 42.195km 완주하여 월계관을 쓰는 ‘반란적 이변 상황’도 없지 않았다. 한국의 그 대표적 사례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다. 고교 때 5.000m와 10000m 두각을 나타내던 황영조는 고교 졸업 후 코오롱에 입사한 이듬해 코칭스태프의 지시로 1991년3월에 열린 국제동아마라톤대회에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했다. 그때까지 훈련으로도 마라톤 풀코스 완주경험이 없었던 황 선수는 이날 레이스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2시간12분35초(당시 한국 최고기록 2시간 11분 34초에 불과1분1초 뒤짐)기록으로 당당 3위로 골인했다.

황영조는 그해 7월 영국 세필드에서 벌어진 하계유니버시아 대회에서 대회 최고 기록인 2시간12분40초로 금메달을 획득, 마라토너로서의 가능성을 과시했다. 외국에서의 페이스 메이커 반란 예는 1999년3월23일 ‘99로마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 선수 타누이가 거사했다. 케냐의 우승후보 필립치르치르에 의해 페이스 메이커로 기용된 타누이는 초반 레이스를 이끌어 주다 힘이 남아돌자 내쳐 달려 2시간 9분56초를 기록, 1위를 차지했다. 타누이를 힘껏 뒤쫓아 가던 필립치르치르는 힘이 부쳐 그를 따라 잡지 못하고 2시간10분15초로 3위를 차지했다.

야당의 대선 페이스 메이커는 속단할 수 없다

비단 마라톤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길엔 상호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보람찬 성취를 이룬 사례가 많다. 그렇다면 금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긍정적인 페이스 메이커는 없는가. 만약 있다면 누가 대선 레이스의 페이스 메이커 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대충 본다면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페이스 메이커를 찾아볼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대선레이스에서는 초반부터 박근혜 후보의 독주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 당내 페이스 메이커는 원천적으로 부존재 한다고 하겠다. 후보 경선에 나섰던 인물들은 결과적으로 당 행사의 장식용에 불과했고, 당 선거기구 등에 위치한 일부 인사들은 말실수 등으로 박 후보의 행보에 오히려 지장을 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면 야당가의 대선 페이스 메이커는 누구인가? 요즘 갈등 속에 단일화 시한에 쫒기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에서 탈락되는 후보는 최종적 페이스 메이커가 될 수밖에 없다. 대선 출사표를 올린 후 문 후보와 안 후보 간의 행보를 보면 문 후보가 먼저 대선출마를 선언, 행동에 들어간 이후 안 후보가 장고 끝에 대선전에 뛰어 들었다. 두 후보는 각기 지지세를 확장하며 독주하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호각지세를 형성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서로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야권 지지세를 확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 중 누가 완주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이 계속 페이스 메이커로 남아 지원군이 될 지는 속단 불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 후보의 갈등이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