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지구촌의 발전은 융합(融合)이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확신하고 있다. 최근 기술과 기술의 소통-융합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의료, 건강, 안전, 에너지, 환경 등 다방면에 걸쳐 미래의 제반 문제를 융합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융합을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2018년 전 세계 융합시장 규모가 6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술과 문화, 예술, 인문 등이 융합된 ‘대(大)융합사회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정부는 2011년 10월 산업융합촉진법을 시행,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제도적 기반 구축에 나섰다. 그리고 금년 8월 16일 국무총리 주재로 제1차 산업융합발전위원회를 개최하고 ’산업융합발전기본계획(2013~2017년)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는 이 계획에서 ‘미래 大융합 시대’에 대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융합분야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 하기위한 비전과 청사진으로 ‘산업강국’. ‘생활부국’. ‘안심대국’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들도 융합이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으로 보고 융합화 전략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Five for Future’('07), 일본의 ‘i-재팬 전략 2015’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각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의료분야 융합이다. 양의학(洋醫學)으로 일원화된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서양 제국은 수 십 년 전부터 서양의학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 타개책으로 동양의술과 제3세계의 전통의술 및 자연의술을 서양의술에 접목시켜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소위 대안의학(代案醫學) 또는 대체의학이 바로 그것인데, 특히 침, 뜸 등에 서양의사들은 매료되고 있다.

한의학의 원조를 자처하고 있는 중국은 양의사, 중의사, 침구사 등 3가지 자격제도를 운영, 그 중 한 개의 자격만 취득해도 다른 자격 영역에 속하는 치료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양의사와 중의사(한의사)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양의. 한의 간 협진을 통한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시키고 있다. 중의사들은 환자를 위해서라면 엑스레이, MRI 등 서양 첨단의료장비를 합법적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북한 역시 고려의학이란 이름으로 양의학과 전통의학을 융합하여 어떤 치료방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체의학을 접목한 서양의학 공세에 철저히 대비해야

그러면 우리나라의 양의-한의 융합실태는 어떤가. 한마디로 한국 의료법은 양의(洋醫)와 한의(韓醫)간에 철통같은 칸막이를 설치하고 있어 융합의 세계 추세를 외면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⑴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⑵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⑴은 양의사와 한의사에 의한 의료행위의 독점, ⑵는 양의사와 한의사 간의 의료방법의 상호침범금지를 밝히고 있다. 이 두 가지 제도는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에 의해 그 실효성이 담보되고 있다. 양의와 한의 간의 융합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의료법의 이같은 규정은 양의학과 한의학의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라도 배우지 않은 분야를 침범하는 것은 무면허자의 의료행위를 금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양의-한의 칸막이는 서로 밥그릇을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직역(職域)이기주의의 옹호에 다름 아니다.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게 의료인 제일의 사명이자 최고의 덕목이라면 양의와 한의가 협진하고 의료 첨단장비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요즘 일부 양의사들이 침과 뜸을 배워 임상에 활용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의료법이 의술의 활용과 발전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면, 특정 직역의 이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칸막이 의료법은 당연히 고쳐져야 한다. 서양 선진국들이 대체의학 이름으로 서양의학과 동아시아의학을 일원화 하고 동아시아로 의료시장을 확대할 목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활용하게 되면 현 우리의 의료제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FTA를 통한 의료공세에도 대응할 수 있는 융합의료제도로의 정비도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