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매회 거의 비슷하다. 작업복 바지에 청재킷, 워커화.

머리는 짧은 단발이고 얼굴엔 화장기도 거의 없다. 늘 묵직한 기계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만지작거리며 각종 실험을 진행한다. 요즘은 하는 일이 좀 업그레이드됐지만 출발은 용접공이었다.

심지어 몸싸움도 격렬하게 한다. 발차기는 물론이고 머리로 상대방 가격하기, 물어뜯기 등 남자들과 엉켜 물불 안 가리는 격투도 마다하지 않는다.

2001년 슈퍼모델 선발대회 출신으로 데뷔 이래 줄곧 여성성을 강조해왔던 배우 한지혜(28)가 터프하고 털털한 캔디로 변신해 사랑받고 있다.

주말 밤 9-10시대 시청률 1위를 달리는 MBC 드라마 '메이퀸'의 천해주를 통해 그는 '깡다구' 있는 씩씩한 캐릭터로 거듭났다.

최근 그를 인터뷰했다.

"재미있어요. 오랜만에 맘껏 연기할 수 있는 역을 만났어요. 몸싸움 장면을 앞두고는 걱정이 많았고 일주일 전부터 몸을 풀고 합을 맞추는 등 연습을 계속했는데 막상 슛이 들어가니 발차기도 높아지고 가격 거리도 잘 맞춰 칭찬받았어요.(웃음) '툼레이더'의 여전사가 된 느낌이었어요. 털털하면서도 너무 예쁘고 씩씩한 캐릭터라 연기하는 게 즐겁습니다."

조선업에 투신한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메이퀸'은 곧 엔지니어 천해주의 성장기다. 그래서 한지혜의 촬영분량은 엄청나다. 또 드라마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과 부산에서 주로 촬영하기 때문에 매주 이동거리도 만만치 않다.

한지혜는 "촬영분량이 많고 이동 거리가 길어 몸은 정말 피곤하다"면서도 "하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그만큼 역할이, 드라마가 재미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매일매일 촬영장에 가는 게 즐거울 정도로 신이 나요. 해주가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보니 극중에서도, 촬영장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해주가 참 예쁜 것 같아요. 울산 시민들도 정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세요."

그의 말처럼 해주는 밝고 따뜻한 인물이다. 어떤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고 가난한 환경 속 계모의 구박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늘 씩씩하다. 전형적인 캔디형 캐릭터.

이에 대해 한지혜는 "캔디는 캔디인데 좀 다르다"며 웃었다.

"일단 화가 나면 사투리가 튀어나오며 사나워지죠.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가 아니라 화날 때 욱하는 성질이 있어요.(웃음) 그리고 오토바이를 터프하게 몰고 다니잖아요. 터프한 캔디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해주가 진 운명의 무게는 상당히 무겁다. 양파껍질 벗겨지듯 하나 둘 드러나는 부모에 얽힌 엄청난 비밀도 감당하기 어렵다.

"솔직히 굉장히 힘들어요. 운명의 무게가 엄청난데 사건들이 하나하나 벌어질 때마다 해주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마음일까 늘 고민해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연기해야 할 때는 과거의 경험을 증폭시키거나 상상해서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작업도 아니고 내가 과연 잘해내고 있는지 늘 걱정이 되죠. 그러다 보니 연기에 대한 고민이 끝이 없어요. 근데 해주가 엄청나게 고생을 하고 괄시를 받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산다는 점이 일종의 돌파구가 돼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참 열심히 사는 애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사는 해주를 저도 열심히 연기하고 있어요.(웃음)"

그는 "예전에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고 그러다 보면 오버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데 지금은 잘해야겠다는 것보다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다. 그랬더니 오히려 연기가 편해졌다"고 전했다.

드라마는 인기에 힘입어 내달 말까지 연장 방송될 예정이다. 그만큼 해주의 고난과 시련도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해주의 고난은 아마 끝도 없을 것"이라며 웃은 그는 "하지만 그런 고난을 매번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가 쾌감을 느끼는 것 아니겠냐. 덕분에 시청률도 잘 나오고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해주의 고난 중에는 15년간 사랑한 창희(재희 분)로부터 하루아침에 버림받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해주의 옆을 강산(김재원)이 따뜻하게 지키고 있다.

그는 "해주에게 창희는 계속 갖고 가야 하는 상처"라면서도 "아직 강산은 해주에게 고마운 파트너일 뿐이지만 이제 서서히 둘 사이의 멜로가 싹트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선업을 그리다 보니 촬영과정에서 이색적인 경험도 따른다.

"현대중공업 안에 아무나 못 들어가요. 들어가서도 헬멧을 꼭 쓰고 운동화와 바지를 입어야 하고 반드시 단체행동을 해야 해요. 그 안에서는 개인 활동이 금지돼 있어 밥도 같이 먹고 화장실 한번 가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엄청나게 큰 배가 동시에 여러 척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죠. 너무나 신기하고 이색적인 풍경인데 우리 드라마에서 그런 모습이 멋지게 그려져 뿌듯해요. 시청자에게도 새로운 볼거리를 안겨 드리고 있잖아요."

해주로 사는 게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 여배우이자 평소 패셔니스타인 한지혜로서는 해주의 '단벌' 수준 의상이 못내 아쉽다고.

"의상이 가장 어려워요. 가난한 엔지니어라 잘 입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촌스럽거나 구질구질하게 입긴 싫은 거죠.(웃음) 9회부터는 거의 두세 벌 의상만을 계속 갈아입으며 나오고 있는데 시청자 중에서도 해주의 그런 모습을 아쉬워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오히려 옷을 잘 입는 게 더 쉬운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는 꼭 멋진 옷을 입는 역을 맡아 지금의 한을 풀어보고 싶어요. 하하."

2010년 9월 결혼한 그는 "결혼하고 나니 감정적으로도 풍부해지고 안정이 돼 연기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2세 계획은 없다고.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지금 연기에 발동이 걸린 상태거든요.(웃음) '메이퀸'의 기운을 받아서 쭉 재미있게 연기를 하고 싶어요."

연합뉴스 :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