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출근해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일과를 확인하고 있다, A가 ‘선생님!’하고 부르며 환한 웃음으로 상담실에 들어섰다. 아직 교실에는 들르지 않았단다. 가방에서 바스락 바스락 무언가를 꺼내어 쭈~욱 내밀었다. 예쁜 봉투에 정성이 담뿍 느껴지는 편지와 초코렛이었다. ‘저 월요일부터 취업 나가서 이젠 선생님 못뵈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어요. 연락 드려도 되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 나도 고마워! 정말 대견해’라며 가만히 아이를 안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A는 지난해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씩씩해지고 밝아졌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부적응을 겪고 있는 1학년 후배의 멘토가 되어 주기도 했다. A는 대전에 있는 4년제 대학 수시 전형에 합격해 놓고 입학 전에 사회경험도 해보고 입학금도 스스로 마련해 보겠다며 취업을 나간다고했다. A는 오랜 시간 노력을 들이며 상담을 했던 여러 학생 중 한명으로 마음이 많이 가는 학생이었다.

학교상담의 특성상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서 사고와 생활의 변화를 통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만, A처럼 장기적으로 상담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2학년이었던 B라는 학생은 6주 동안이나 교실에 가지 않고 위클래스에서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선생님! 이제 교실로 갈래요' ‘왜? 공부하기 싫다며...’ ‘심심해서요.’ 그리고 다음날부터 교실로 돌아간 B는 학교 수업에 잘 적응하더니 지난 8월에 취업이 되었다.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B는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사회복지시설에서 성장한 안타까운 아이였다. 아마도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엄마의 마음인 보살핌과 관심이 아니었을까. 언어적인 상담을 싫어한 그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먹을 것을 챙겨 주는 것과 미술도구를 이용한 상담으로 스스로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C는 학교폭력 피해학생으로 만났는데, 장기간 동안 친한 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해 정서불안과 우울이 높아 전문기관에 연계하고, 학부모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여 효과를 본 학생으로, 지난 9월에 취업이 되어 기쁨을 준 학생이었다.

많은 학생들을 만나며 상담이 성공해서 일상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한 마음에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상담이 효과를 보지 못해서 마음 아프게 학교를 떠난 아이들도 있다.

학교상담의 기본적인 목표는 학생들의 변화이다. 학교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환경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존재를 소중한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한다. 자신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장·단점 및 흥미, 적성, 가치관 등을 정확히 알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 여러 가지 상담이론과 기법, 도구들을 이용해서 스스로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의 경우 상담사 혼자만의 힘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가 힘들다. 학생 스스로가 변화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상담실을 찾은 경우에는 조금 수월하지만, 비자발적으로 상담실에 오는 학생들, 특히 무기력한 학생들이나 비행으로 인해 의뢰된 학생들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가족과 담임교사의 진정어린 도움은 그들이 변화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아이들은 부모, 교사나 친구 등 관심 있는 사람에게서 자신이 제일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 인정과 지지를 느끼면서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 소중한 사람, 무언가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되면서 서서히 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예방과 사후 처치상담이 조화 이룬 통합적 접근 필요

학교상담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상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교사의 시각과 상담은 문제 있는 학생들만 하는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편견이다. 얼마 전, 한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의 아이를 불러서 상담을 함으로써 학급 친구들에게 문제 있는 학생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 학생은 학기 초 전국적으로 실시 된 정서·행동 선별검사에서 상위기관(위센타)에 의뢰해 심층상담을 해야 할 대상이었다. 부모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여 의뢰하지는 못했지만 관심대상의 학생이었던 것이다. 부모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의 상황을 외면할 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였다.

이처럼 사실 그동안의 학교상담이 생활지도와 같은 비슷한 의미로 인식되어져 수업에 방해되는 학생이나 학교규칙을 어기고 일탈행동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에게 초점이 맞추어 졌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상담이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 학생들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극적인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해 예방과 사후처치상담이 조화를 이루는 통합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교육당국의 더욱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상담정책과 학교관리자, 교사, 전문상담사, 학생, 학부모들이 상담에 대한 기존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