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권 말기인 1960년 봄, 조지훈 선생은 잡지 ‘새벽’에 당대의 명문 ‘지조론―변절자를 위하여’를 실어 권력의 단꿀과 양지만을 좇아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지식인의 변절 행각을 질타했다. 선생은 “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고 썼다.

그는 ‘지조론’에서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선생은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다”고도 했다.

이인제 선진당 대표의 현란한 변신을 보고 생각나 적어 본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30일 “새누리당은 우리와 협력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 다리까지도 불태워 없애버렸다”며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이 지금은 여론의 강자이고 국회의원 수가 많고 집권하고 있는 세력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힘 앞에서는 그 교만한 횡포를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맹비난 했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돼 이 발언을 뒤엎고 새누리당과 합당했다.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입문한 이 대표는 여야를 넘나들면서 탈당과 창당, 당적 이동을 반복한 끝에 벌써 13번째 당적을 갖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벌써 6선에 성공, ‘피닉제(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는 정치 24년 동안 무소속을 포함하면 2년에 한번 당적을 옮긴 셈이다. 그래서 권력의 단꿀과 양지만을 좇아 다닌 지조없는 정치인이란 소릴 듣는다.

새누리당과 합당을 선언하고 친정으로 15년 만에 돌아오게 된 이 대표는 그동안 자신의 어지러운 정치 행로를 공자의 주유천하(周遊天下)에 비유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운명적으로 정치를 처음 시작한 어머니의 당으로 합류하게 돼 감사하다”며 “공자님이 어머니의 나라를 떠나 10여 개 국을 돌아다니다 14년 만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저도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나라에서 자신의 큰 뜻을 실현하기 어려워, 경륜을 펼 수 있는 나라를 찾아 유랑한 공자에 자신의 정치 행적을 비유한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199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터지자 탈당, 국민신당 후보로 대선에 뛰어들었다. 대선 후에는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해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으나 대선후보가 되는 데 실패했고 다시 탈당, 충청권 정당인 자민련에 합류했다. 이후 국민중심당을 거쳐 지난해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 올초 자유선진당이 선진통일당으로 개명하면서 당 대표가 됐다.

그는 야권 단일화에 대해 ‘야합’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모습은 모순되기 그지없다. 가치와 노선을 공유하는 정파끼리 선거를 앞두고 손을 잡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는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를 비판할 명분도 없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

“충청인 자존심 팔아먹은 정치인” 비난 여론

이번 합당으로 새누리당은 충청권을 품음으로써 선진당의 4석을 추가, 153석의 원내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대선 시너지 효과에 대해선 여론이 만만치 않다.

야권에서는 이 대표에 대해 “철새정치인의 종결자”라며 차라리 정치은퇴를 하라고 압박 중이다. 충청 출신 정운찬 전 총리가 ‘세종시수정안’에 불쏘시개가 된 데 이어 이번에 이 대표가 대선 불쏘시개로 전락해 현란한 변신을 하고 있다. 충청권 일부에서는 창업자 이회창의 허락도 없이 선진당을 급매물로 내놓은 기회주의자, 충청인의 자존심을 팔아 먹은 정치인이란 비난을 사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백기투항을 하는 그의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발언을 계속하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리고 있다. 남을 비난하기 전에 철새정치인으로 변신해 세인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되돌아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