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북경대학에서 열린 한·중 수교 20주년 및 이회영 순국 8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발표 차 중국에 다녀왔다. 북경의 도처에서 일본의 댜오이댜오 영토 도발에 분노한 중국인들의 반일의식을 보여주는 구호나 표지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느 식당 입구 안내 전광판에는 '일본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야시장의 선술집에도 이 표지는 붙어 있었다.

북경에서 견문한 중국인의 반일 감정

또 다른 식당 입구의 바닥에는 커다란 일장기를 깔아놓고 일본 총리를 희화한 사진과 함께 이 표어를 써 놓아 손님들이 밟고 지나다니게 만들어 두었다. 일본인에게는 주유를 해주지 않겠다는 주유소도 보였다. 번호판에 '일본인과 개는 접근금지'라고 써 붙인 오토바이도 지나다닌다. 심지어 어느 상점 앞에는 '개는 출입 가능, 일본인은 출입 금지'라는 더욱 모욕적인 표지가 붙어 있었다.

반일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느 혼다 차량의 브랜드 마크는 '댜오이댜오는 중국 주권 중국 영토!!'라고 쓴 빨간 스티커로 가려져 있었다. 상하이의 일본 의류점 유니클로(UNIQLO)가 매장 쇼윈도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고유 영토임을 지지한다(支持釣魚島是中國固有領土)'는 문구를 부착할 정도였다고 하니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뒷골목에서 만난 중국인

중국 국기 하강식이 거행될 시간에 천안문 광장을 지났다. 여전히 많은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그 경관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인 친구 말에 의하면 얼마 전 한국인 관광객을 안내하고 천안문 광장을 돌아보는데 사복 경찰이 다가와 일본인 관광객이냐고 물어왔다. 혹시 일본인이면 중국인들로부터 피습당할 불상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병력을 붙여 주기 위해서였단다. 하기야 백주 도심에서 주중 일본 대사가 탄 차량이 중국인에게 피습당해 차량에 부착된 일장기를 탈취당할 지경이니 엄청난 인파가 운집한 천안문 광장에서 경찰들이 더욱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이 신채호·이회영 선생이 거주했던 허름한 뒷골목을 답사할 때 동네 주민들이 하나 둘 우리 주위에 몰려들었다. 혹시 일본인이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들렸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국에서 온 학자들이고, 이곳이 한국 독립운동의 대표적 인물들이 거주했던 곳이란 사실을 설명하자 그들은 곧 길을 안내하며 친근함을 표시하였다. 여간해서는 감정 표출을 잘 하지 않는 중국인들이지만, 이번 일본의 댜오이댜오 침탈에 대해서만큼 그들은 굳이 분노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영토 분쟁에 미국을 끌어 들이려는 일본

주미 일본 후지사키 이치로 대사는 10일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은 똑바로 갈 뿐 우경화는 없다”고 강변하였다. 그는 곧 이어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 연설에서 센카쿠는 영토 분쟁 대상이 아니며, 미·일 안보동맹이 중요한 전쟁 억지 수단이라고 말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중국인들의 분노는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이 동아시아 영토 분쟁에 미국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조약과, 러스크 극동담당 국무차관보의 서한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 있다. 즉,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배경에는 미국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댜오이댜오 영토 분쟁에서는 미·일 안보동맹을 운운하며 미국을 개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독도에 관해 한국인에 원죄를 지니고 있는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거리이다.

한 때 독도 침탈에 대해 들끓었던 우리의 반일감정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중국에서는 여간해서 식을 줄 모르는 기세이다. 그러고 보면 ‘만만디’도 경우에 따라 효용이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