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릭스의 4번 타자 이대호(교도=연합뉴스)(자료사진)

이대호(30·오릭스 버펄로스)가 일본프로야구 진출 첫해 마감까지 단 두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대호는 7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세이부와 홈 최종전을 치르고 다음 날에는 장소를 옮겨 후쿠오카 야후돔에서 소프트뱅크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이대호는 5일 소프트뱅크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24호째 홈런을 쏘아 올리며 퍼시픽리그 홈런 부문 선두인 나카무라 다케야(세이부·27개)를 3개 차로 맹추격했다.

정규리그 종료까지 단 두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이대호가 몰아치기에 능한 점을 감안할 때 홈런왕 주인공을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대호는 리그 타점 부문에서는 88타점으로 2위 나카무라(79타점)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며 타점왕을 예약한 상태다.

리그 타점 1위를 비롯해 홈런 공동 2위, 타율 10위(0.284), 출루율 5위(0.368), 장타율 2위(0.474) 등 각종 타격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일본 무대 데뷔 첫해에 거둔 성적이라기에는 믿기지 않는 수치다.

더군다나 팀이 일찌감치 최하위로 처지고 감독이 시즌 도중에 교체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동기 부여를 잃지 않고 거둔 성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록 리그 개막 전 목표인 3할 타율, 100타점 목표는 채우지 못했지만 이대호는 자신이 공언한 대로 국내 선수가 일본 진출 첫해 고전한다는 고정관념을 확실히 깼다.

◇이대호, 5월과 7월 리그 MVP = 한국프로야구에서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의 위업을 달성하고 9경기 연속 홈런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이대호지만 시즌 초반에는 일본프로야구 적응에 애를 먹었다.

생소한 일본 투수들의 볼 배합과 넓은 스트라이크존, 갑작스러운 감량에 따른 타격 밸런스 붕괴로 3~4월 24경기에서 타율 0.233, 2홈런 10타점으로 부진했다.

팀이 원한 확실한 오른손 거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대호는 센트럴리그와의 인터리그를 통해 대폭발했다.

이대호는 5월19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패색이 짙던 9회 팀을 수렁에서 건진 역전 투런아치를 그리며 시즌 6번째 홈런을 터뜨렸다.

6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이어진 인터리그에서 이대호는 타율 0.325를 때리고 홈런 6개, 타점 20개를 수확해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이대호의 활약은 올스타 팬 투표 1루수 부문에서 이나바 아쓰노리(니혼햄)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오를 정도로 일본 야구팬들로부터도 확실히 인정을 받았다.

이대호는 다시 찾은 본연의 부드럽고 강한 스윙을 앞세워 7월까지 승승장구하며 5월에 이어 퍼시픽리그 타자 부문 7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비록 8~9월에 지친 모습을 보여 타율을 깎아먹고 홈런도 많이 추가하지 못했지만 시즌 내내 오릭스의 허약한 타선을 지탱해낸 것은 4번 타자 이대호였다.

◇타점왕 비결은 상황에 맞는 팀배팅 = 팀 타율(0.240)이 리그 최하위에 머무를 정도로 팀 타선이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대호가 타점왕을 예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집중력에 있다.

▲ 오릭스의 4번 타자 이대호(교도=연합뉴스)(자료사진)

이대호의 득점권 타율은 주자가 2, 3루에 있을 때 가장 높다. 무려 5할(4타수 2안타)의 타율로, 누상에 주자가 없을 때 0.244에 비해 2배 이상이다.

주자 1, 2루 상황에서의 타율은 0.385이며, 1, 3루 상황에서도 0.348에 달한다.

눈에 띄는 대목은 주자가 2, 3루에 있을 때나 1, 3루에 있을 때 홈런은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1, 2루 상황에서도 홈런 개수는 1개에 불과했다.

이대호가 득점권에서 개인 기록을 의식해 큰 스윙을 휘두르기보다는 팀 승리를 위해 철저하게 팀 배팅에 충실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는 "야구는 단체운동이기 때문에 아무리 7관왕을 하고 홈런왕을 해도 팀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며 개인 기록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다만 이대호에게 왼손 투수 공략은 숙제로 남았다.

이대호의 왼손 투수 상대 타율은 0.242로 오른손 투수의 0.303에 비해 6푼 이상 차이가 난다.

퍼시픽리그에 빼어난 왼손 투수가 많고, 몸쪽 공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왼손 투수의 바깥쪽 코스에 걸치는 공을 제대로 공략해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대호가 내년에 올해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려면 왼손 투수 극복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대호, 전 경기 출장까지 '-2' = 개인 성적 이상으로 이대호가 올 시즌에 남긴 의미 있는 기록은 바로 총 144경기 중 142경기에 출전했다는 것이다. 시즌 개막부터 지금까지 전 경기 출장을 한 것이다.

오릭스에서 전 경기에 출장한 선수는 이대호가 유일하다.

팀 성적이 바닥을 헤매고 8월~9월 들어 체력적으로 지친 상황에서도 이대호는 4번 타자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켰다.

팀이 치열한 순위 다툼을 하는 상황이라면 무리해서 뛸 수도 있겠지만 이미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이대호는 힘들 때면 지명타자로 출전해서라도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오카다 아키노부 전 감독이 지난달 25일 성적 부진으로 갑작스럽게 해임되자 "오카다 감독이 해임된 건 전적으로 내 탓"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대호는 부진한 팀 성적 속에서 고군분투한 것도 모자라 팀의 외국인 타자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대호는 일본 진출 첫해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오는 10일 김해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 값진 경험을 쌓은 이대호는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의 4번 타자로서 일본 타도의 선봉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 chang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