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삼국 중 어느 나라에 미인이 많았을까. 기록을 종합해 보면 신라 왕도 경주에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신라 진흥왕대 왕녀 미실(美室)은 절세의 미인. 그녀는 자유분방한 사랑을 즐기며 요염하고 품위 있게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진흥왕과 내연관계에 있으면서도 미남 화랑 설원랑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사실 미실의 소녀시절 첫 사랑은 소년 무사 사다함. 그가 가야와의 전쟁에서 돌아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연정이 여러 미남들에게 옮겨간 것이다.

진지왕대 도화랑(桃花娘)도 빼어난 미모였다. 왕은 밤만 되면 몰래 궁중을 벗어나 여인의 집에 숨어들었다. 유부녀였던 도화랑은 왕의 집요한 구애를 뿌리치지 못해 넘어가지만 이 사건으로 폐위당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화랑 김유신을 미혹시킨 천관녀(天官女)도 아름다웠던 것 같다. 두 사람은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소년 김유신은 애마의 목을 날리면서 까지 천관녀와의 사랑을 결단하지만 훗날 죽은 천관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천관사까지 지어 명복을 빈다. 원효스님과 사랑한 요석궁주, 지귀의 가슴을 불타게 했던 선덕여왕도 미모가 대단했다.

고구려 산상왕은 사냥을 나왔다가 주통촌((酒桶村. 술파는 주점)에서 미천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가 바로 후대에 왕위를 계승하는 동천왕의 어머니. 주통촌 여자가 얼마나 미녀였기에 왕비 몰래 밀회를 즐겼을까. 고구려에도 미인이 많았는데 왕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종종 미인들을 북방 군주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미인은 숫자는 적었지만 정절(貞節)의 화신으로 기록된다. 대표적 여인이 바로 개루왕 대 도미의 부인. 그녀는 지금의 한강유역에서 도미와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왕의 눈에 띄고 나서 기구한 미인의 운명이 시작된다.

왕은 그녀를 무조건 궁중으로 불러 동침을 강요했다. 부인은 그때마다 기지로 벗어나지만 왕은 도미의 눈을 빼 왕도에서 추방하는 포악으로 강수를 둔다. 결국 도미부인은 궁중을 탈출하여 외딴 섬에 방치된 눈먼 남편을 찾아 나선다. 그녀가 일신의 영화만을 바랐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을 따라가지 않았을 게다.

지금의 행주산성에 살았던 ‘한주미녀’의 고사도 백제여인의 칼날 같은 정절을 기록한 것. 그녀는 고구려 안장왕의 태자시절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고을 태수가 그 미모를 알고 잡아다 성폭행하려 했으나 태자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조국까지 배신하며 봉화를 올려 낭군의 행주산성 정벌을 돕는 것으로 기록된다.
백제가요 정읍사는 장사를 위해 집을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상이 된 여인의 사랑을 담았다. 남편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어둠을 밝히는 달님에게 남편의 귀환을 간절하게 호소한다. 이도령에 대한 정절을 지키려 변학도의 회유와 협박을 죽음으로 저항한 조선 미인 춘향은 정읍 인근마을 남원출신으로 백제여인의 절맥(節脈)을 이었다.

백제 미인은 정절의 화신으로 기록

정절녀가 많았던 백제여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머리 모습은 중국기록 북사(北史) 백제전에 나온다. “여인들은 머리를 땋아 뒤로 드리우고 시집을 가면 나누어 두 가닥으로 만들어 머리 위에 올렸다”고 돼있다. 이는 중국 돈황석굴에 그려져 있는 당나라 여인들의 머리 모습과 비슷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오래 전 부여 정림사지에서는 백제여인의 모습을 상정해 볼 수 있는 도용(陶俑)이 출토된바 있다. 머리는 네모 모양의 가체를 쓰고 얼굴이 길고 턱이 비만한 흰 피부의 복스런 상이다. 최근 디지털 첨단기술을 이용해 복원 된 백제 남녀가 공개 돼 화제를 모았다. 백제여인의 얼굴은 긴 편이고 미간이 좁은 전형적인 북방인의 모습이었다. 정림사지에서 나온 도용의 모습과 비슷하여 첨단기술의 능력을 실감시켜 주고 있다.

한 지아비를 절의로 섬겨 부귀영화는 물론 목숨까지 내놓았던 백제 여인들. 그 부활은 툭하면 배신하고 폭행하며 심지어 독살까지 서슴지 않는 난륜의 세태에 시사 하는 점이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