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설날, 5월5일 단오절(端午節)과 함께 우리 한민족 3대 명절의 으뜸인 8월 보름 추석(秋夕)이 목전으로 다가서고 있다. 잇따른 태풍의 강타로 다 된 농작물에 막심한 피해를 입은 농가들의 시름 속에서도 추석은 어김없이 계절의 문을 열고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오곡이 무루 익은 철에 맞는 명절이라 예부터 우리 겨레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다. 팔월 추석은 삽상한 날씨도 적당하고 수확 철이라 먹을 것이 풍부 해 항상 이때와 같이 잘 먹고 잘 입은 채 살았으면 좋겠다는 민초들의 염원을 표출하고 있는 속언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이 속담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8월 한가위의 풍요함을 말하기보다 이 날을 제외한 다른 날들의 백성 곤궁. 고독 등을 실감나게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떻든 추석이 가까워지면 어려움 속에서도 막연한 명절의 기대심리가 백성들의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 땅의 주부들, 그 중에서도 특히 차례(茶禮)를 준비하는 맏며느리들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공포의 대명사처럼 들린다. 추석을 맞을 때마다 차례 준비와 가족. 친지 등을 수발해야 하는 가사노동과 예고 없이 돌출되는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심신이 극도로 피곤한 것이다. 이른바 명절병(病)-명절증후군을 피하기 어려운 게 우리 맏며느리들의 처지였다.

요즘의 젊은 주부들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또는 단독으로 차례를 마련하는 며느리들은 설날이나 추석이 가까워 오면 어김없이 명절병을 앓는다. 올 추석도 예외가 아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나고, 팔다리가 쑤시며, 허리가 아프다. 잠을 설치고 입맛도 없어지고 우울한 증상 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추석날 시어머니가 아들딸만 챙기고 며느리의 친정행을 무시하거나,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의 수고는 당연시 한 채 모처럼 들른 다른 며느리들의 촌지봉투를 침을 튀며 자랑하는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맏며느리는 “나는 뭐냐”며 속이 뒤집힌다. 여기에다 고달픔을 호소하는 아내에게 무심한 남편, 명품자랑. 자녀 진학 자랑을 잔뜩 늘어놓고 차례가 끝나면 구구한 구실을 내세워 먼저 제집으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손아래 동서의 얄미운 행태에 맏며느리는 울화통이 터진다.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하려 해도 용납하기 힘들다.

최근 들어 명절증후군은 맏며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어머니도 앓고 있다. 자녀부부의 맞벌이와 핵가족화에 따른 자식들과의 별거로 내외만 살고 있는 늙은 어버이들의 경우 새벽부터 하루 종일 몸 성치 않은 노모(老母)가 차례준비를 하느라고 허리를 못 편다. 연로한 남편이 일거리를 도와줘도 그렇다. 그리고 경제권을 틀어쥐고 있는 며느리가 추석을 쇠로 오면서 아들과 다투지는 않았는지, 운전하고 오는 아들과 손자녀들에게 별 탈은 없는지 걱정이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한가위를

추석이 끝나고 왁자지껄 하던 아들 손자들이 떠나고 집안이 휭하니 비게 되면 노모는 우울증에 걸려 한동안 애를 먹는다. 또 다른 명절병리 현상의 하나는 모처럼 추석에 모인 형제간 동서 간에 집안 제례문제, 부모 봉양 문제, 재산 문제 등을 논의하다 감정이 격해 큰 싸움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극도의 경우 일시적 분노의 감정을 억제 못해 참극을 초래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즐거워야 할 추석이 ‘비극의 한가위’가 되고 만다. 이래서는 되겠는가.

따라서 추석을 맞는 가족 모두는 서로를 이해하는 배려의 심정을 갖고 가사노동은 남녀가 적절히 분담하고,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언행을 가능한 한 자제해야 한다. 시어머니는 집안 제례를 맡고 있는 맏며느리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겠고, 자식이나 며느리들에 대해 편애자세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며느리들도 노부모의 처지를 봉양의 효심으로 수렴하고, 서로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하며, 제 입장만 생각해 처신하는 얌체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형제들도 우애를 상하는 일이 없도록 추석날의 대화는 좋은 말만 하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게 바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자매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