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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도 웃음 잃지 않는 필리핀 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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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23  16: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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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수도 마닐라 동쪽 외곽에 있는 타이타이시의 피난소. 원래는 농구장인 이곳엔 지난달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파식강 강가의 무허가 판자촌 126가구 주민들이 한 달 넘게 모여 살고 있다.
"선생님, 제 아들을 후원해주시겠어요?" (Sir, can you sponsor my son?)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돌아보니 한 20대 여성이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물끄러미 한국인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이 루스린 페레라는 이 28세 여성은 '미안하다'는 대답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페레씨를 만난 것은 21일 오전 11시(현지시간) 필리핀 수도 마닐라 동쪽 외곽에 있는 타이타이시의 피난소. 원래는 농구장인 이곳엔 지난달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파식강 강가의 무허가 판자촌 126가구 주민들이 한 달 넘게 모여 살고 있다.

한 가정당 할당받은 공간은 불과 2평 남짓. 집에서 겨우 챙겨나온 가재도구를 쌓아올린 틈 사이 비좁은 공간에서 수재민들은 숯불을 피워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정정섭)의 CDP(Child Development Program·어린이 개발 사업)센터 타이타이지부 주변에만 이런 피난소가 5군데나 된다고 한다.

타이타이시의 강변 판자촌 주민들은 거의 매년 여름 태풍과 집중호우의 피해를 봐 피난소 신세를 진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집에서 물이 빠질 때까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5개월간 정부와 세계 NGO(비정부기구)가 지원하는 물자에 의지해 피난소에서 생활하는 것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수재민 중에는 건강이 안 좋아 얼굴에 활기가 없는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대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표정이 밝았다.

   
▲ 필리핀 타이타이시 피난소 화장실 앞에서 여성들이 물통에 물을 담고 있다. 126가정이 생활하는 이 피난소에는 화장실이 이곳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변기가 달랑 하나 있는 화장실을 가리키며 "이곳 외에는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주민들은 "여기밖에 없다. 1천명 정도 되는 남녀가 같이 이용한다"며 다같이 까르르 웃었다.

맨발이거나 슬리퍼를 신고 구슬치기를 하고 있던 아이들은 기아대책 봉사단원들을 크게 반겼다. 아이들은 봉사단원의 손을 잡고는 자기 이마에 가져가 댔는데, 이는 필리핀인들이 연장자에 대해 존경을 나타내는 방식이라 한다.

집 가득 들어찼던 물이 조금 빠지면서 피난소 생활을 마친 가정을 방문했다.

엘시 바하누스탄(46·여)씨는 15평 남짓 돼 보이는 이 판자촌 집에서 남편과 자녀, 손자손녀 등 7명과 함께 살고 있다. 부엌은 여전히 무릎 높이까지 물에 잠겨 있는데도 이 여성은 더없이 환한 얼굴로 한국인 구호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박광수(56) 기아봉사단원은 "이 사람들에겐 물질적 가난이 행복과는 상관이 없다. 체념한 것이 아니다. 이런 삶이 자기네 생활일 뿐이다. 사람들이 매우 낙천적이다"라고 말했다.

송하종(39) 기아봉사단원은 "기아대책이 CDP를 세워 필리핀 빈곤 아동들을 가르치는 것은 이 나라 미래에 대한 투자"라며 "아이들이 하루하루 남의 도움을 받아 굶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 필리핀 타이타이시 피난소 아이들이 구슬치기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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