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판에 초대형 쓰나미가 일어났다. 측근조차 긴가 민가 하던 안철수 후보가 지난 19일 대권 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지금 야당의 최대 관심사는 ‘단일화’와 ‘정치 쇄신’이다. 문재인 후보는 대선 후보 당선 후 첫 마디가 “안철수 원장과 상의(?)해서 대선에 나서겠다”였다. 민주당 스스로 정권교체 의지가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민주당은 안철수 후보의 도움이 없이는 대선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무소속에게 자리를 내줬다.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홀로서기가 힘든 게 민주당이다. 그래서 민주당에는 ‘숙주정당’, ‘불임정당’이란 닉네임이 붙은지 오래다.

안 후보에 대한 민주당의 러브콜은 대선 투표 직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안철수는 그 동안 왼쪽 사람들과 놀았다. 지금도 그의 주위에는 왼쪽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 왼쪽 깜박이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주문야안(낮엔 문재인, 밤엔 안철수·晝文夜安)’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박선숙 전 의원이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과연 안 후보는 민주당 성향이 강한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그의 측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경제에 이헌재, 외교·안보에 윤영관을 심볼로 내세웠다. 이헌재는 골수 시장주의자다. IMF 위기에 처한 DJ정부가 ‘서민 대중경제론’을 버리고 시장주의 방향으로 선회했을 때 이를 이끌었던 금융 관료 거물이다

윤영관은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부장관으로서 이라크 파병에 적극 찬성했다가 사임 처리된 인물이다. 당시 이 같은 입장을 가졌던 사람들을 흔히 ‘한미동맹’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동맹파’로 부른다. 윤영관은 동맹파의 수장이었다.

20일 안철수의 국립묘지 참배 행보는 이 같은 우회전을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대통령 후보로서는 유일하게 이승만과 박태준의 묘역을 찾았다. 박근혜조차도 하지 않은 일이다

그는 지난 3월4일 ‘탈북자 강제 북송’을 반대하면서 중국대사관 앞에서 220일째 철야농성을 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했다. 대선 후보 중에선 안철수 뿐이다.

이같은 행태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시장체제를 소중히 여긴다는 신호이다. 그의 행보, 그가 연출하는 정치적 상징은 오른쪽이다.

안 후보는 ‘후보 단일화’에 대해서는 명확한 표현을 하지 않은 채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민주당의 전면적 쇄신을 내걸었다. 그는 대한민국은 낡은 가치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치가 바뀌어야 미래가 바뀐다는 말도 했다. 그는 기존 낡은 정치의 틀을 깨고 싶어 한다.

목적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안철수 후보다. 그는 “‘정치 프로세스’ 변화가 궁극적인 목표이지 정권교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안 후보는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안철수의 가까운 측근인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는 안철수의 후보 단일화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정치전문가들은 당분간 두 후보가 독자행보를 이어가며 각각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뒤 대선후보 등록 일을 앞두고 책임총리제를 바탕으로 한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안철수, 기존 정당과 대립각 세울 때 빛나

이제 지지율 확보가 관건이다. 안철수 후보가 검증의 과정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으면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고 문재인 후보와의 격차가 벌어진다면 출마 포기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중립지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기에 안철수는 긴 호흡을 가다듬을 것으로 예상한다. 5년 후 대통령의 기회도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당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영향력도 갖추었다.

안철수 후보는 기존 정당과 대립각을 세울 때 빛이 난다.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날부터 지지율이 하락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안철수는 '안철수' 다워야 한다. 그래야만 안철수도 살고 정치판도 희망이 있다. 4류 정치를 바꿀 구세주로 안철수 후보가 등판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장에 이어 대선에서 역시 간만 보고 기권하는 ‘간철수’가 될 확률도 높다. 그가 단일화에 응하는 순간, 사퇴하는 순간에 안철수는 ‘대권 불쏘시개’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면 노무현 정권 출범에 불쏘시개가 되었던 '제2 정몽준'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