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 자리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 아마 수명이 짧은 장관직 보다 나은 것 같아. 내 지역에서는 왕 부럽지 않다구!”. 좀 오래전 얘기지만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부 모 부에서 차관을 하다 고향 도지사 발령을 받고 내려와 일년을 지낸 M씨가 기자들과 어울린 주석에서 실토한 ‘도지사직 예찬론’이다.

도지사(이하 지사)에 대한 M씨의 이런 정서는 노년을 살고 있는 전 임명직 지사들도 유사하리라고 본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신임 지사가 발령 나면 서울로 모시러가는 가는 것은 물론, 관내 초도순시나 연두순시 때는 관하 시군에 비상이 걸리고, 시장, 군수가 타 관할 접경지까지 나가 ‘황공하게’ 지사 영접을 해야 했다. 지사가 시장·군수의 임면권을 갖고 있어 지사를 왕처럼 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전직들의 공통된 술회이다.

자치단체장 주민직선제 실시 이후에는 지사의 위상에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초자치단체장인 시장, 군수, 구청장은 물론 광역자치단체장인 광역시장들과 같이 도지사들도 중앙보다 우선 표밭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고, 중앙정부를 상대로 예산 따오기와 관내 기업유치 등에 진력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재선을 위한 우군(友軍) 외연 확대를 위해 ‘집토끼’ 관리에 유념하면서 유관기관, 시민사회단체 등을 보듬는 일을 낮은 자세로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민선 자치단체장은 권위주의시대에 비해 그 위상이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한 예로지사의 경우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던 시장·군수 임면권이 없어졌다. 그러나 지사의 무게는 그 관할 지역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도의 수장(首長)’ 이어서 ‘도지사=도통령(道統領)’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대통령은 한 사람밖에 없으니 도(道)의 수장인 지사를 ‘도통령’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사를 도통령 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그의 권한 사항을 보면 수긍이 간다. 도 단위 자치단체 수장임과 동시에 위임사무 처리와 관련 국가 하급행정기관장으로의 이중적 지위를 갖는 지사는 수많은 권한을 행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면 △자치단체의 대표 및 사무 통할권 △사무의 관리 집행권 △소속 행정청, 관할 자치단체에 대한 지도감독권 △소속 직원에 대한 임면 및 지휘감독권 △도의회에 대한 발언권 △규칙 제정권 △재의 요구권△선결처분권 △사무위임 위탁권 등이다.

이같은 법률상의 권한을 기반으로 도민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는 지사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포부도 커져 대권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런 한편 임기 절반을 지나면서 자신의 공고한 입지를 과신, 아집(我執)이 정치적 행정적 소신으로 포장되어 “나를 따르라!”는 독선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도 없지 않다. 김문수 경기 지사,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두관 전 경남지사, 박준영 전남지사 등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나서 중도 하차했거나 경선에서 실패했다.

지사는 민간영역 완전 장악욕심 버려야

권한과 위상의 차이는 있으나 미국에서도 여러 지사 출신들이 대권가도를 달렸다. 루즈벨트와 윌슨이 뉴욕 주지사, 린든 존슨과 조지 부시가 택사스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를 각각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됐다. 요즘은 롬니 전 메사추세스 주지사가 공화당 후보로 화이트하우스를 향해 맹렬히 뛰고 있다. 일본에서는 우경화의 깃발을 들고 “한일합방은 한국인이 원한 것”이라고 망발을 일삼고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고 있다. 각국의 지사 자리가 만만치 않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할 것이다.

정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지사의 정치적 위치나 관내 영향력이 크다 해서 자만해서는 안된다. 도민과 불통하면서 일방통행식 정책을 추진하면 주민들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비록 투표율 저조로 불발로 그쳤지만 김태환 제주지사가 정식 발의된 주민소환운동 대상이 됐었고, 김대수 삼척시장도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가 발의한 주민소환투표대상자가 되고 있다. “내가 누군데!”라는 우월감으로 지사가 민간영역까지 완전 장악하려 든다면 결국 반감을 확산시켜 선출권자들로부터 ‘레드카드’를 받게 될 것이다. 늘 고언(苦言) 하지만 지사는 정당한 민(民)과 싸우지 말아야 하고,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