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의 단초 인물이었던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은 역사상 죽음으로 사관정신(史官精神)을 지킨 이다. 탁영은 성종(成宗)때 사관에 기용되어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왕이 그를 사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의 강직함과 올바름 때문이었다.

탁영은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역사를 바로 평가할 수 없었다.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祭文: 고대 중국 楚나라 義帝를 죽인 항우를 빗대어 쓴 글)을 사초에 싣고 만다. 탁영이 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인가.

“천지의 억울함을 풀고 일월의 어둠을 걷어내야 비로소 기강과 법도가 찬연하게 수복될 수 있으며 예악문물이 가지런히 거행되어 마침내 중흥할 수 있다”는 것이 사관 김일손의 논리였다. 즉, 탁영은 어둡고 슬픈 과거의 상흔을 털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탁영을 싫어했던 연산군은 그의 반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자신을 능멸하며 충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탁영에 원한을 품은 반대파 이극돈에 의해 사초(史草)가 공개 되고 조의제문이 세조 찬탈을 비판한 글로 밝혀지면서 김일손 등은 능지처참되고 스승 김종직은 시체가 파헤쳐져 부관참시되었다. 올바른 사관의식(史官意識)을 펴다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다.

선현들은 올바른 역사기록 정신을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비유해 왔다. 춘추필법이란 무슨 뜻인가. 성인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 나타나는 기본정신이다. 대의명분에 따라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거짓 없이 역사를 기록하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논법을 말한다.

과거 춘추관(春秋館)은 역사를 기록하는 기관이었다. 임금 가까이 앉아 언행을 기록하여 사초(史草)를 만들고 왕이 죽은 후 실록을 편찬하는 임무를 맡았다. 임금은 재임 중 함부로 사초를 열람하지 못했다.

오늘날 언론인을 과거 사관(史官)에 비유한다. 신문에 나타나는 기록은 따지고 보면 매일매일 역사를 기록하는 일사(日史)와 같다. 하루하루의 기록이 모여 나중에는 방대한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멀티미어시대 홍수처럼 쏟아지는 매체들, 그리고 여기에 종사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인의 자질과 책임의식, 사이비기자의 양산이 문제되고 있다. 제대로 수련 받지 않은 무자격 언론인들의 배출과 이들의 무책임한 보도에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우선 쓰고 보자는 식의 보도 자세와 나중에 오보로 밝혀져도 ‘아님 말구 식’의 처사에 피해자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세종시에서는 업체를 상대로 금품을 갈취한 사이비기자들이 구속됐다고 한다.

금품 갈취하는 사이비기자 추방해야

언론이 당국으로부터 통제 받는 시대에도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오보에 대한 피해 문제는 항상 이슈가 되었다. 오늘 날 언론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시대 보다 오히려 언론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책임 요구가 거셌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 언론은 양적으로 더욱 방대해지고 권력이 커진 때문인지 이런 비판의 소리를 귀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겸허함을 잃은 언론, 과연 올바른 자세인가.

기자들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확인을 의무화 하고 상대편을 배려하는 자세가 도외시되고 있다. 단순히 ‘설(說)‘만을 갖고 기사를 써 기업에 큰 피해를 입히는가 하면 경쟁사와 야합, 상대사를 흠집 내는 기사도 있다. ’기자는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며 어느 누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언론인의 윤리 덕목을 잃은 것 같다.

청와대 기자실을 춘추관이라 명명한 것은 여기를 출입하는 언론인들에게 춘추정신의 자세를 주문한 것이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성과 춘추필법을 지키는 덕목을 주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