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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무술 축제의 뿌리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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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10  14: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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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尙州)는 고 신라(新羅) 영토의 제일 북쪽에 위치했었다. 그래서 상주(上州)라 부른 것이며 통일 후에 지금의 표기로 바뀌었다. 서쪽으로도 소백산맥 동쪽의 영토를 가야가 차지하여 그 위세가 변변치 못했다.

그런 신라가 진흥왕대에 이르러 갑자기 한강 상류인 중원지방을 장악하며 고구려와 대응하고 백제의 강역을 넘보는 나라가 됐다. 고구려는 당시 이민족의 침공으로 모든 국방력을 북방지역에 쏟을 때 였다. 영주 진흥왕은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진흥왕은 용감한 가야전사를 선두에 세우고 한강유역의 고구려 진보(鎭堡)를 공격하여 점령하기 시작한다.

당시 신라의 전위 군사력은 바로 소년 무사집단 였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싸움에 나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화랑도의 출현 시기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지만 진흥왕대 이전 이미 법흥왕 대 부터 원시적 화랑도가 결집되어 전쟁에 나가 용맹을 발휘했다는 주장도 있다.

신라 화랑도는 결사(決死) 무사집단으로 일종의 사병격(私兵格)이었다. 우두머리인 화랑(귀족의 자제 중 선발)아래 2~3백명의 무리(徒)로 구성 된 집단이었다. 주로 서라벌에 살고 있는 말(馬)을 소유한 소년들로 구성되었고 매일 도시락을 지참하여 출근했다고 한다. 덕망 있는 화랑들에게는 많은 무리들이 따랐으며 이들이 나중에 신라사회를 움직이는 중추역이 됐다.

진흥왕 대 신라군은 소백산맥을 넘으면서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때 많은 화랑도가 전사했다. 왕은 어린 전사들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왕은 572AD 외사(外寺)에서 팔관회를 열고 죽은 화랑도의 영혼을 위로 했다고 한다.

화랑의 제사 유적 ‘외사’는 지금의 어디인가. 많은 학자들은 외사가 왕경 경주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백산 충북 중원 땅에 ‘외사’가 있다.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에 가면 천변에 접해 있는 큰 절터가 있다. 마을 이름이 바로 ‘외사’다. 이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 됐을 것으로 보이는 당간지주가 외롭게 남아있다.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경작지에는 시대를 높이 올려 볼 수 있는 신라 와편이 수 없이 흩어져 있다.
이 절터 옆을 흐르는 천이 괴강에 합류 되고 음성을 거쳐 중원 땅 달천에 당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흥왕이 순수 악성 우륵을 만났다는 낭성(살미면. 고산자 김정호 비정)과 육로 혹은 뱃길로 연결된다.

고구려 군사들은 달천을 빼앗기지 않으려 이곳에 배수진을 친 것인가. 신라는 많은 젊은 전사들을 희생시킨 가운데 이 지역을 점령하는데 성공 했을 것이다. 이로부터 수 십년 후 진흥왕은 중원 땅 전장 터에 절을 세우고 많은 화랑도의 죽음을 애도한 것은 아닌지.

고대 우리는 화랑도를 만든 전통적 무사 나라였다. 그것은 지정학적으로 반도에 위치하여 외침을 많이 받아온 처절한 생존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무사의 나라이자 화랑도 정신인 ‘임전무퇴’가 아니었으면 지금과 같이 당당한 민족의 보존이 어려웠을 것이다.

신라를 이은 고려의 군사력은 당시 중국도 깔보지 못했다. 훗날 중원대륙을 통일한 여진(女眞)도 숨을 죽이고 살았으며 부모의 나라로 섬기겠다고 사신을 파견하여 줄 곳 추파를 던졌다. 고려정부는 여진을 야만이라 대우하며 무참히 정벌하고 도륙까지 하는 호기를 부린다.

화랑도 기상 구현하는 행사 추가 했으면

무력이 약해진 것은 조선이 개국하면서 사병을 혁파하고 모든 군사력을 명나라에 의지하고 부터이다. 임진전쟁이후 조선은 정신을 차리고 잠시나마 무 숭상의 기풍이 조성된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복원하고 군사훈련을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상무정신의 발흥은 성리학 외는 모든 것을 터부시하는 가치 때문에 곧 시들고 만다.

옛 중원경 충주에서 세계무술축제가 개막됐다. 한동안 존폐문제로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여 세계축제로 승화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옛 중원경에서 열리면서 무의 심벌격인 화랑도의 기상을 구현하는 행사가 하나 없다는 점이다. 내년에는 진흥왕이 팔관회를 연 ‘외사’ 문제를 고증하여 축제의 서장으로 이들을 위로하는 제사한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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