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생태 한 마리 두부 한 모 사 들고털실가게 앞을 서성이곤 해성큼 들어서지 못하고 그이의 조끼는 어떤 색깔로 하는 것이 어울릴지아이 목도리는 어쩐 색깔로 하는 것이 예쁠지가게 안을 기웃기웃 훔쳐보며 궁리하다결국엔 또 그냥 돌아오곤

세종데일리   2013-12-13

나무가지에 걸린 저 달곱기도 하여라그리움이 사무쳐 머물고 있나 봐낮에 나온 저 달상심한 마음에 가던 길 멈추고온몸 멍 자국 파르라니 떠있네유리알같이 맑은 홍시 터질까 두려워먹지 말고 곱게 싸 쌀독에 묻어둘까혹여 그리운 님 나오면꿈길에 전해주게 될라가슴

세종데일리   2013-11-21

이른 새벽길안개 저편에 아버지 나뭇짐 지고싸한 안개 내리는 뚝방 길 돌아가며동트기 전 나무 팔러 가시던아버지 모습이 보인다어깨가 나무 무게 열 배 만큼이나무거웠을 어버지의 두 어깨조랑조랑 자식이 매달렸을 나무 짐짊어진한 발자국마다 돌 자갈 길 모진 생

세종데일리   2013-10-21

가을산 기슭에이미 죽어 다 썩어난 소나무 한 그루그 옆 물박달나무에 온몸 기대고 있다황조롱이 한 마리 날아와이곳 저곳 틈을 헤집어 먹이를 찾다가는어디론가 다시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그렇게 나무는 죽고 썩어서여기저기 깨지고 허물어지면서서서히 산이 되고 있

세종데일리   2013-09-30

거저 익는 것이 있을까익기 위하여 모든 것들은고통을 참아내며오랜 시간 묵묵히장대비에 시달리고불볕에 몸 맡기고산기슭 외딴 집 담장 안벌레 먹은 사과 몇 알투명한 가을 햇살부드러운 바람에 발갛게 익어간다저 사과처럼 익고 싶다지나간 시간으로 만들어 낸인내의

세종데일리   2013-09-02

커다란 황소 등을 거슬러온밤하늘 별들의 고향월악의 끝자락 용학계곡깔깔대는 어린아이 웃음이커다란 돌멩이 사이에서 흘러나온다날이 훤하게 새는 아침떠날 줄 모르는 풀벌레 노래가품에 안긴다서로의 어깨를 부비며계곡을 따라 흐르는 음악물 따라 내려온다산소리여 물

세종데일리   2013-08-12

가물가물 보이는강물 위 종이배가녀리고 힘겨운사막 위 꽃송이모래바람에 실려 온 너오가는 바람만이 설핏 보이는구나외로워 하지 마라꼿꼿한 니가 아름답다오늘보슬비가 오지 않느냐 ▶한국작가 시 등단▶시울림문학회원▶짓거리시세상회원▶한국작가동인회원▶시집 「초점 맞

세종데일리   2013-07-11

연보라의 꽃 폭포시원스레 쏟아져 내려와나른한 심신을 적셔주고꽃송이 사이사이로 스며든 햇살이옷자락에 어른어른꽃 그림자 그려 넣는등꽃 나무 그늘등나무 줄기같이얼키설키 자라난 그리움이숭얼숭얼 등꽃으로 피어나면그 진한 향기 휘감아끌어 덮고서는배냇저고리의 아이

세종데일리   2013-05-30

화이트 핑크 젤릭스와 만남 봄이 간지럽다꽃송이에 마음을 빼앗긴 난연애를 들킨 사람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몇 번의 봄이 다녀가도 이만큼 붉어질 수 없을 것이다관객이 든 극장처럼 봄의 무대가 화려한 공연중이다꽃이 후루루룩 피어나고 환호성과 박

세종데일리   2013-05-12

바다 구경하느냐벼랑의 한 줌 흙 비집고고개 내민 풀 한 포기여"저 장하지 않나요. 꺾지 마셔요."저기 바다에 귀향하는 투박한 어부의 손물살은 섬바위 툭툭 건드리고더 크게 소리치며 떨어지는 바람뒤통수 때리는 새 아침에 ▶1996년 「해동문학」으로 등단▶

세종데일리   2013-04-29

혹한을 다 이겨내고도언제 겨울이 있었느냐는 듯내색하지 않는산이든 들이든 냇가든 호숫가든개의치 않고양지든 음지든 어느 곳에서나환한 웃음으로 말을 건네는서로 다투지 않으면서서로 뽐내지 않으면서제자리를 지켜내는가만가만 피어나는제각각색깔과 모양이 다르지만서로

세종데일리   2013-03-18

나는 여기서 살고너는 산 너머 거기서 살고그렇게 한평생을 살다가내가 죽고 너도 죽어서이 광활한 천지가 온통 쓸쓸할 때우리 차마 하지 못한 그 무수한 말들만 남아서소리는 스러지고 오롯이 그 형체만 남아서낙목한천落木寒天 찬바람에백설로 펄펄 휘날려라마구 나

세종데일리   2013-02-28

어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정동진 해돋이도 빚으셨네눈부신 빛살 사이로 흰 눈 덮이고바람 한 겹 깔고 녹아 흐른 물기둥주름살 사이로 삐죽삐죽 나온 뗏자국조각구름에 반짝 헹궈 널었지새들 짝지어 날아 올라간 하늘 귀퉁이그 언저리로 헐떡이며 꿈틀거리던내 청춘의

세종데일리   2013-02-13

집이 없는 이도 가족이 없는 이도공평하게 나이를 먹는 것처럼누구나 떡국 한 그릇씩은 먹을 수 있는넉넉함이면 좋겠다바쁜 일에 쫓기던 도회인 누구에게나설날을 준비해 놓고 기다려주는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고그곳에 세배 드릴 부모가 계시고마음껏 정을 나눌 친구

세종데일리   2013-02-05

한 6개월된 아기가 아빠 등에 업혀 다니다가보물 제277호 고려동종高麗銅鐘 돌계단에서그 아빠 품에 안겨 쉬고 있다다시 만난 반가움에 까꿍까꿍 아는 척을 했더니고 쬐그만 입술이 온통 달디단 꽃잎이다이름이 뭐냐고 아빠에게 물으려는데천년도 더 넘은 느티나무

세종데일리   2013-01-15

고독한 수행자인 나목을부드럽게 어루만지며눈이 내린다춥지 않으냐고외롭지 않으냐고조근조근 속삭이며숲 어스름에 내리는 눈은아기에게 젖 물린여인처럼 상냥스러워퇴근하는 남정네의발걸음처럼 믿음직해숲 어스름에 눈 내리면어둑어둑하던 숲 속이등불 밝힌 듯 환해진다솜이

세종데일리   2012-12-18

대가 식솔 며느리로 일 년 사 계절허리 한번 펼 수 없었던 시집살이에 동동 걸음한겨울 함지박에 빨랫감 이고개울로 빨래 가시던 눈보라 속 어머니지금도 뒷모습이 춥기만 합니다맨손으로 얼음장 깨가며붉게 언 손 입김 불어가며 빨래하시던어머니추위에 언 얼굴이

세종데일리   2012-12-04

성성 할머니눈에서 가는 비 내린다불그레한 볼수심 가득떠지지 않는 실눈눈물 그치지 않는다두 손 꼬옥 잡고 마주하는 여인의 눈빛백 년의 삶 명주실만큼 맑고 반짝 인다슬픔은 다가오고꾸욱 다문 입에서마지막 이별의 말씀효부는 시어미니가 만드는 거야떠나신다 ▶한

세종데일리   2012-11-21

베란다에 널어 둔무청 시래기와 표고버섯들햇볕 받아제 안의 물기 비우고가벼워지면영양성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데햇살 고운 창가에눅진 마음을 널어놓으면조글조글 마른자리 사이사이로어떤 성분이 배어들까소슬바람에 국화 향내 실려 오는햇살 고운 창가에차근차근

세종데일리   2012-10-31

지는 잎새 하나가이러저리 흔들리며떨어져 내린다도대체 모를잎새의 그 짧은 낙하그래서 더욱 고요한 하늘 ▶충북 보은 출생▶1983년 『월간문학』▶시집『아버지는 두릅나무 새순만 따고』『분리된 꿈』『속초행』『하늘뜨락』▶현 청주대 국문과 교수

세종데일리   201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