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가 곱게 내리던어느 여름 여행지에서의 저물녘항구엔 커다란 범선 한 척이 떠 있었지데지마와프 이층 카페의 베란다에서젊은이들은 모던재즈를 연주하고 있었어흥에 겨운 너는고개를 까딱이며 리듬을 탔고덩달아 신이 나서손으로 한들한들 박자를 맞추면서뒤따르던 내

세종데일리   2016-07-30

잡힐 듯 가까워 보이지만다가서면 까마득히 멀어지는 섬태초의 신을 신고 걸어 들어간 그곳나미브 사막 저 멀리 신기루가 섬을 띄운다바람에 불려 저만치 달아나는붉은빛 모래 바다에 새겨지는 물결무늬문장들을 미처 한 줄 읽기도 전에광풍은 또 다른 언어를 새겼다

세종데일리   2016-06-13

꽃비 분분히(芬芬) 날리며꿈결인 양 벚꽃의 시절은 갔다흰 팔뚝 드러내고 걷는 산길뻐꾸기 소리 아련하고나무들이 피워내는 연록의 새잎 사이사이은실 같은 햇살 눈부시다잎맥 타고 흐르는 푸름의 정기내 실핏줄 골골마다 스며든다꽃에 홀려갈팡질팡 나른하던 심신에초

세종데일리   2016-04-25

떠나신 후세상이 더디게만 갑니다열리지 않는 문 저쪽에 계신 그대잘 있나요?이곳엔 뜰 안 홍매화 꽃송이가 벙글어한두 송이씩 피어나고 있군요여린 꽃잎 하나 조심히 벗겨내어그리움 아로새긴 후에꽃그늘 아래 살포시 놓아둡니다이슥토록 뒤척이다 잠깐 겉잠 든 때에

세종데일리   2016-03-10

문득 거울을 보고 싶은 적이 있었던가, 당신하루 혹은 한 해가 이울어질 무렵어스름에 잠겨 희미해진 실루엣은세월의 강물에도 젖지 않아잡념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될 테니한결 그윽해진 동굴 속 내면을동그마니 비춰봄이 어떨까문득 거울을 보고 싶은 적이 있었던가

세종데일리   2015-12-28

꽃도 열매도단풍졌던 고운 잎까지다 내려놓고서야홀로 겨울을 버티는 나목처럼나, 이제너와의 꿈과 사랑애증과 연민까지다 내려놓으련다칼바람에삭정이 툭툭 떨구며언덕배기에 홀로 선 나목처럼안으로안으로 불 밝히고홀가분히천상의 봄날이나 꿈꾸련다 2010 등단만해

세종데일리   2015-11-18

주인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로몇 해 째 비워 둔 산 밑의 묵정밭에서울서 왔다는 그 손자라는 이가읍내 복덕방 노인 대동하고 가끔씩 다녀간다는데워낙 후미진 곳이라밭이 팔리지 않아 걱정이라는데할아버지가 애지중지 살뜰히도 가꾸던 밭이라그 밭머리의 산에 묘를 써

세종데일리   2015-09-14

폭염에뒤척이는 밤명멸하는 천장의 야광별스티커 헤아리다잠이 들면 하늘과 맞닿은 그곳오이꽃 토마토꽃 가지꽃가지가지 꽃들이죄다 반짝이는 별 되어꿈자리에 소복이 쏟아진다쏟아진 자리마다옹골지게 열매 맺어 또각또각가파른 계단 올라 보면각기 크기 다른 스티로폼 박

세종데일리   2015-07-15

비 개인 뜰감나무 밑 응달에 조롱조롱 둥글레꽃 피었네청옥 빛의 그 종은산사의 은은한 종소리를 내네산중 청량한 바람을 몰아오네세상사에 찌든 때정결히 씻어 주고세상사에 고달픈 때위로가 되어주네그 청아함으로 2010 등단만해 한용운 시맥회 시 입상좋은생각

세종데일리   2015-04-30

- 自我봄볕스산한 몸에실크 스카프로 감겨오다꽃바람눅진 마음결에 스미다혹은 살랑살랑 스치다뜰서성이다 보고 말았다해이한 하늘가 떠돌던나르시스의 혼이황금빛 날개 살포시 내려놓는 모습을그리운 그 모습오래도록 은밀히 지켜보았다 2010 등단만해 한용운 시맥회

세종데일리   2015-03-25

혹한의 칼바람아직 간간이 창을 때려도닫아걸었던 창문 활짝 열어새 숨을 쉬어볼 일이네잔설 비집고 솟아난수선화 새싹 꽃샘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방글거리는 것은봄날의 꿈이 있기 때문마음의 빗장 열고새 희망 단단히 품어 안고지나간 일일랑 다 잊어버리고이제 다

세종데일리   2015-02-09

텃밭 푸성귀 뽑아알타리무김치에 동치미에배추김치 여남은 포기까지앵두나무 밑 파묻은 김장독에정갈히 쟁여두고내친김에 난방용 백등유두어 드럼 들이고 났더니 인제 함박눈 무량무량 내려 쌓여도마음은 한껏 느긋하여라땅이 안아주는 온기로김장은 마침맞게 익어 갈 테고

한양동 기자   2014-12-04

들길을 걷는다야문 곡식풍성풍성 지천이던 시절 지나텅 비어버린 들판잡풀마저 스러져황토가 드러난 밭 가늙은 감나무엔 까치밥이 두어 개 냇가에 서 본다새끼 나아 기른 살진 물가 버리고어디로 가는 걸까끝 간 데 없이 아득한하늘 저편을 향해 나는 새 산길에 접

세종데일리   2014-11-16

햇살, 더 깊고 그윽이 마루에 스미네마른 바람은 이따금 린넨 커튼을 흔들며예고되었던 이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속삭이네하여, 이제 더는 시간이 없을 것이라마당의 열매 한층 달콤해지려 안간힘을 다하고잎은 더 곱게 단풍들려 애를 쓰네이별의 전령은 흰 눈

세종데일리   2014-10-08

누렁소 등짝 같은 들판에선아버지 낫으로 올게 벼 베는 소리어머니 홀태 날에 벼 훑는 소리논둑에선 뙤약볕에 야문 두렁콩 콩깍지가 톡 밭둑 호박은 둥실둥실 살 오르고밤하늘 보름달도 두리둥실 떠오르면환한 달빛 아래 우리 모두 손을 잡고빙글빙글 돌았었지 덩실

세종데일리   2014-09-03

타래 머리다담벼락 위서 치렁치렁 늘어트린진녹색 머리채에눈부셔라 화려한 그 꽃핀 장식꽃 폭포다얼음장 같은 물에치솟는 그 정염 씻어내며아래로 아래로쏟아져 내리는대견해라가장 아름다운 순간자신을 내려놓아지나는 이의 발아래보시(布施)되는 그 육신(肉身) 201

세종데일리   2014-06-26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과자부스러기 쪼던 새날아가다언덕배기의 은사시나무 안에 스미는 걸 보았네숨어서'푸름이 좋아! 푸름이 좋아!'노래하더니숲의 상수리나무 가지로 날아가 쉬더니찔레꽃, 아카시아 꽃 쪼아 먹더니푸른 하늘에 스미는 걸 보았네푸름이 좋아푸름이

세종데일리   2014-05-22

꽃놀이 한 번 가지 못하고업무에 바쁘신 분혹은 직장을 얻지 못해 애태우시는 분계절을 의식할 여유도 없이병마와 씨름하는 환자분혹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 아프신 분향기 택배 보내드립니다사무실 창가에도 병실 창가에도고운 봄 햇살에어른어른 라일락 꽃그늘이

세종데일리   2014-04-16

투둑 투둑창문 두드리는 빗소리문득, 두고 온 사람이 그립다세월의 강물에 휩쓸려 흐르다하나둘 손을 놓친 사람들그중에 유독 아쉬운 이 하나 있어이제는 희끗희끗 새치에 이마에 기러기 몇 마리쯤 키우고 있을달팽이관 안에 녹음된은은한 빗소리의 리

세종데일리   2014-02-26

솨아솨아 바다가 운다이승에서 삶을 옮기시려고통을 짊어지시는가한겨울 문풍지 바람쩍쩍 눌어붙는 무쇠 문고리만큼마음속 얼음장이다미치지 않으면 안된다 하여씨줄 날줄 짜집기하여조리개를 열고 한올 한올 수놓는다욕망을 채우려 갈급한 행동부끄럽다아픔을 견디시는 아버

세종데일리   201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