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라 바쁘고 고단하여손을 놓친 후가슴 한편에 자리하여늘 그리움이 커 가던그때 그 벗반백 년만의 해후에도전혀 낯설지가 않았네두 손 꼭 잡고서꿈을 꾸는 듯 우리는그 시절 소녀들로 되돌아 가품었던 희망같이 부르던 노래에맑은 웃음풋풋한 향내가 진동하였지여느

유영옥   2024-07-14

우주 어느 공간을 떠돌다이 별에 착륙하게 된 것인지착륙하였으나수령이 오천 년이라는저 바오밥 나무처럼뿌리내려 정착하지도 못하고길어봤자한 백 년 떠돌다가는언젠가 훅 떠나가게 될 터인데웬 짐이 이리도 많은지바리바리 이고 지고 다니는지결국, 어느 날엔가자신의

유영옥   2024-04-19

인기척 없어적막하던 그녀의 작은 창가어느 날엔가화분 하나 놓이더니창문 자주 열리고​햇볕 쬐며 오래 서서 그녀는​화분의 카랑코에 꽃을 구경하네겹 칼란코에라고도 하고칼란디바 퀸로즈라고도 하는장미꽃같이 어여쁜 그 꽃을조그만 꽃송이들이

유영옥   2024-02-27

몇 해 전부터 병이 든 담장 옆 늙은 감나무지난여름 장마와 태풍에 뒷바라지가 힘에 부치는지별 같이 반짝이던 자식들 무녀리로 다 떨어뜨리고달랑 까치밥 하나만 남아 발갛게 익어간다까치에게 미안한 일이지만올해는 까치밥을 남길 수 없겠다홍시를 유난히 맛있게

유영옥   2023-09-27

그륵이란 낱말을 들으면체하여 목이 멘다그륵, 그륵....수없이 입속으로 되뇌어 보는어머니 손맛 소복하게 담겼던 그륵고향 사투리였지 그릇을 그륵이라고늦은 저녁상 물린 밤앞 논 개구리울음 유난할 때면남폿불 밝혀놓고마당 가 펌프 물 퍼 올려어린 나는 그륵을

유영옥   2023-07-27

대처에 직장 붙들어객지 밥 먹는 아들이가끔 다녀가겠다는 전화를 할 때면뭐 먹고 싶니? 말해 봐, 다 해 놓을게어미는 애달아 재촉이다집밥, 그냥 집밥이 먹고 싶어요메뉴가 뭐든 간에 오로지집밥이면 된다는 아들의 말에어미는 또콱!목이 메는 것이다 ▶2010

유영옥   2023-06-21

부추 밭에는 방동사니가시금치 밭에는 명아주가부추인 척 시금치인 척 숨어 산다냇가 둔덕이나산기슭 양지에서고요한 풍경이 되고 싶은때로 고향 그리다눈물짓지만무른 듯 야물게제자리를 지켜내는환하게 꽃 피울 날 기다리며숨죽이고봄볕 야금거리는 것들눈이 부시다 ▶2

유영옥   2023-03-02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을 보면산과 산의 부드러운 능선이끝없이 이어져 흐르는가 싶을 때나지막한 산이 품은 호수를 만나게 되지하지만 만났는가 싶을 땐 이미호수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곤 해스친 것들에선 향기가 나산국화 흔들고 온 바람 같은사과 따다 돌아온 촌

세종데일리   2022-10-20

시장에 가려무심코 대문 나서다깜짝 놀라되돌아와 마스크 써야 하고마을 뒷산 오붓한 산책길에한 쪽 귀에 달랑달랑 걸어놨던 마스크저만치 앞에서 누가 오면깜짝 놀라즉시 반듯하게 고쳐 쓰고좁다란 길이지만 최대한 거리 두려안간힘 쓰며 지나야 하고아는 사람 만나도

세종데일리   2020-07-01

등산 길에 우연히 만났던 돌탑이흘끗 보면서 무심히 지나쳤던자그마한 돌탑이어젯밤 꿈길에 또렷이 나타나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조심히 피해 가려다발끝이 돌부리에 걸려 겨우 몸의 중심 잡았으나돌탑은 와르르 무너지고무너진 돌을 주워 하릴없이 돌탑을 쌓다가자꾸만

세종데일리   2019-12-18

그대와 나 사이의 길적당한 그리움의 거리 유지될 수 있게 늘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기를가로수 낙엽 머리 위로 내리고혹은 비에 함빡 젖고눈 내린 날엔제자리걸음 해서 쌓인 눈 밟는 시늉으로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겠지빌딩 위로 휘영청 달 구경하는 그 모습문득

세종데일리   2019-01-20

사람들 속삭임의보따리가 줄기를 타고다가온다줄기를 타고 오면오래 들은 소리는 저장 반납기에 넣고새로운 소리가 줄기를 타고귀에 앉아 속삭인다현실에서 도망쳐나만의 공간이 담긴 기억의 문을 열어오늘의 이야기가 담긴 보따리를 갖고 문을 잠근다눈치 보지 않고 쉴

세종데일리   2018-11-25

서녘 경계 그 어디쯤에서 비롯해이리도 아스라한 것인지구슬픈 풀벌레 울음소리 잦아질 듯 이어지고저물녘 강가그대 흔적 흩뿌려지던 강가에거짓말처럼 배롱꽃이 곱습니다고운 배롱꽃이 집니다한창인 줄만 알았더니이제 막 피어난 듯싶던 꽃잎들이연신 물 위로 뛰어내려물

유영옥   2018-08-15

한 철의 봄훌쩍 떠난다고 뭐 그리 대순가봄날은 짧지만꽃 진 자리에 알알이 열매 들고인생의 봄날잠시 왔다 속절없이 떠나지만크든 작든그 흔적 오래 남을 테니남겨지는 것들이 있으면끝이 끝이겠는가죽은 나무라도 다 쓰임이 있는 법 ▶2010 시 등단▶만해 한

유영옥   2018-04-19

소국(小菊) 폭격 맞았다짙은 향내 풍기던 가을은밤사이 백기 들고바싹 말라 툭툭 부러지는감나무 가지 위겨울의 전령인 그녀가살포시 내려앉아 승전의 기쁨을 알린다꽃비 분분히 흩날리던녹음의 싱그러움 가득하던향기로운 열매 익어가던풍요의 뜨락을 이제는 비워야 한

유영옥   2017-11-29

전어 굽지 않아도고소한 냄새 집안에 진동했던 신혼엔태평양 건너의 벗이그곳까지 고순 내가 나서 배 아프다고전화기 속에서 킬킬 거렸다쌀살 돈 떨어져 보리죽 먹고 첫 애 낳으러 가던 날말로만 듣던 전어구이 한 번 먹으면순풍순풍 애도 잘 낳을 듯했지만언감생심

유영옥   2017-09-30

해안 산책로 굽이돌다파도에 뺨 맞았다난간을 물어뜯으며발밑 가로막는 컴컴한 바다는짐승 울음소리를 낸다날 비린내를 풍긴다어스름한 산등성이꽃등 환히 밝힌 섬말나리일 나간 어부 기다리는 아낙처럼파도 응시한 눈길 애잔하고깎아지른 바윗길가파른 계단오르고 또 올랐

유영옥   2017-07-27

새 잎 무성한 모과나무 그늘그 싱그런 푸름에 묻혀고운 분홍빛이 어른어른핀 듯 만 듯 담담히 모과 꽃 핀다여느 봄꽃처럼 서두르지 않고잎이 돋은 후에야 살며시 피어잎과 함께 어우러지는 배려 깊은 꽃혼자 도드라져 자태를 뽐내지 않는은은하고 겸손한 꽃있는 듯

유영옥   2017-04-26

제 안에 물을 가득 품고도 물이 그리워그리움 위로 또 한 켜의 그리움을 키워간다물 언저리에 닿을 수 있다면괴발개발이면 어떻고 게발게발이면 어떤가당신으로 가득하여마디마디 동여매고 단속하였지만그리움은 병이 되고 화를 부르더니그여 끝끝이 활활 타들어간다제

유영옥   2017-03-01

이른 아침 산책 나섰다가조붓한 상수리나무 숲길에서비질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수북한 낙엽에 자칫산객이 미끄러져 넘어질까아무도 모르게 동네 뒷산 굽잇길청소하시는 분이 계시는구나병원에서 돌아오는 길모과나무라곤 없는 대로변에서버려져 금이 가고 얼들은 모과 한

세종데일리   2016-10-25